38 엘리사가 길갈로 돌아왔다. 그 곳은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을 데리고 사는 곳이었다. 마침 그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엘리사가 한 종에게, 큰 솥을 걸어 놓고 예언자 수련생들이 먹을 국을 끓이라고 하였다.
39 한 사람이 나물을 캐려고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덩굴을 발견하고서, 그 덩굴을 뜯어, 옷에 가득 담아 가지고 돌아와서,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국솥에 썰어 넣었다.
40 그들이 각자 국을 떠다 먹으려고 맛을 보다가, 깜짝 놀라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며, 그 솥에 사람을 죽게 하는 독이 들어 있다고 외쳤다. 그래서 그들이 그 국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41 엘리사가 밀가루를 가져 오라고 하여, 그 밀가루를 솥에 뿌린 뒤에, 이제는 먹어도 되니 사람들에게 떠다 주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니 정말로 솥 안에는 독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열왕기하를 시작하면서 ‘길갈’에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이 교체되었고, 길갈에서 요단까지, 이스라엘 정복전쟁 여정의 역순으로 여정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가 ‘길갈’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땅에 대한 정복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생명을 되돌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정복하시고 회복하시는 일들이 벌어져야 한다고 예상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 길갈에서 ‘흉년’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제 이야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의 회복을 기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바알’ 이 천둥 번개의 신, 풍요와 곡식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봐야 한다. 그들은 ‘바알’을 열심히 섬겼다. 그런데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끔직한 흉년이다.
물론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려는 자들에게도 이 흉년은 동일하게 경험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이 다르다. 다른 이들은 이 흉년을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게 지나가겠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회복하셔서 먹게 되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종, ‘한 사람’이 잘못 넣은 들포도덩굴이 문제가 되는데, 이것은 쓴 열매를 가지고 있는 식물로 알려져있는데, 다량으로 먹으면 치명적인 독에 중독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기근이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밀가루’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것이 이 본문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충실한 백성들에게 오염되고 치명적인 독성의 ‘포도덩굴’조차도 음식과 배부름으로 바꾸셔서 제공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구출하시며 그들의 먹을 것을 제공하신다.
42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왔다. 그런데 맨 먼저 거둔 보리로 만든 보리빵 스무 덩이와, 자루에 가득 담은 햇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지고 왔다. 엘리사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라고 하였더니,
43 그의 시종은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그것을 어떻게 내놓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가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으니, 주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계속된 이야기에서도 보리 빵 스무 덩이와 자루에 가득담은 햇곡식을 100여명의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맨 먼저 거둔 보리는 원래 제사장에게 바쳐야한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써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맨 먼저 거둔 보리를 엘리사에게 가져온 것은 이 율법에 대한 기억과 순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기근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햇 곡식인 보리를 가져오는 것은 매우 엄청난 헌신이라는 점도 지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곡식을 엘리사에게 주었을 때, 백여명의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노 남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당연히 오병이어와,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굶주리게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헌신과 수고와 노력, 한계를 뛰어 넘는 복종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더욱 전심으로 선택하고 의지하길 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최우선으로 우리의 섬김을 받기 합당한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님만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사랑하시는 자녀, 백성들에게 먹을 것과 쓸 것을 제공하신다.
우리가 앞서서 지적한것처럼 땅을 정복하시고, 생명과 미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먹고 마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실 것이다. 자연적 환경과 상황이 전혀 ‘공급’을 기대할 수 없는 때라도,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신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보지 말고,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은 반드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풍성한 것들로 경험될 것이다. 그 은혜를 바라보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