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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약자들을 위해서 / 신명기 24:10–2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0 당신들은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 줄 때에, 담보물을 잡으려고 그의 집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11 당신들은 바깥에 서 있고, 당신들에게서 꾸는 이웃이 담보물을 가지고 당신들에게로 나아오게 하십시오.
12 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면, 당신들은 그의 담보물을 당신들의 집에 잡아 둔 채 잠자리에 들면 안 됩니다.
13 해가 질 무렵에는 그 담보물을 반드시 그에게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가 담보로 잡혔던 그 겉옷을 덮고 잠자리에 들 것이며, 당신들에게 복을 빌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입니다.
이전 본문에서 함께 살펴봤던 것처럼 채권과 채무가 과도하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여러가지 장치들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가난의 실재적인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가난할 수 있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생명권을 침해받을 만큼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다. 그래서 스스로 담보물을 가지고 나오도록 해야 하고, 직접 집 안으로 들어가 담보물을 강탈하고 착취할 수 없다.
사실 담보물을 해가 질 무렵에 바로 돌려주어야 한다면 담보물을 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라이트에 의하면 기본적이고 물리적인 담보물을 여러사람으로부터 빌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러건의 빚에 매이지 않도록 만드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율법을 참고하면 맷돌이 일용할 양식과 관련한 담보물이라면 겉옷은 잠을 자는데 필요한 것이다. 가난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상성 자체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가난을 한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준다면 최소한 가난 자체를 극복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상성과 사생활을 지켜낼 수는 있다.
14 같은 겨레 가운데서나 당신들 땅 성문 안에 사는 외국 사람 가운데서, 가난하여 품팔이하는 사람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5 그 날 품삯은 그 날로 주되, 해가 지기 전에 주어야 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날 품삯을 그 날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가 그 날 품삯을 못받아, 당신들을 원망하면서 주님께 호소하면, 당신들에게 죄가 돌아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에 대한 조건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의 땅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든지간에 품팔이하며 살아가야하는 가난한 사람이 그 노동의 값과 삯을 해가 지기 전에 받음으로써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이로써 노동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어야 한다.
만약에 이 노동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해소하실 것이다. 부당한 임금과 부당한 노동 조건은 불의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짓는 죄다. 그렇게 고용하는 악덕 지주들을 하나님께서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모두 불법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노동 운동을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고 정당한 임금과 노동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 착취하는 시도들이 여전히 벌어진다.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이 이뤄지지 않고, 마땅한 임금상승이 이루어지지 않고, 온갖 갑질과 강도 높은 업무량에 대해서 하나님이 내리실 판결은 선명하다.
16 자식이 지은 죄 때문에 부모를 죽일 수 없고, 부모의 죄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연좌제에 의한 보복적 조치로 끔찍한 비극을 경험한 예를 가지고 있다. 이 법 또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드러난 범죄자 친족이 개인적으로 무죄하더라도 공동체의 분노나 복수에 노출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연좌제는 성립해서는 안된다.
사실 이스라엘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언약적 연결성을 생각한다면 각 세대의 헌신과 실패가 하나님에 의해 복과 저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모-자녀의 연좌제가 자연스럽게 여길 가능성이 높아야 맞다. 하지만 ‘법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부모-자녀 사이를 떼어놓음으로써 약자의 입장에 서 있을 가능성이 있는 자녀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7 외국 사람과 고아의 소송을 맡아 억울하게 재판해서는 안 됩니다. 과부의 옷을 저당잡아서는 안 됩니다.
18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거기에서 속량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 당신들이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고 왔거든,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돌아갈 몫입니다. 그래야만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20 당신들은 올리브 나무 열매를 딴 뒤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마십시오. 그 남은 것은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의 것입니다.
21 당신들은 포도를 딸 때에도 따고 난 뒤에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마십시오. 그 남은 것은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의 것입니다.
22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십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서 외국사람, 고아, 과부에게 억울한 재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힘없이 소송에 의해서 피해와 착취를 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명령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속량하심이 근거에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착취당할만한 위치에서 보호받아야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의 경험에서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명령이다. 또한 이삭줍기도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생존권을 보호하는 실재적인 법률이 제시된다.
결국 그 복있는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복과 은혜에 의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법이고,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한다.
우리의 시대는 갈수록 무질서하고 이기주의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오로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무질서와 이기주의를 넘어 포용과 환대로 나아갈 수 있다.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이 포용과 환대의 시작이어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온 인류에 미침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오늘 하나님의 도구되어 그 쓰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