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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복음을 위한 선택들/ 사도행전 24:24–25:1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복음을 위한 선택들/ 사도행전 24:24–25:1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4 며칠 뒤에 벨릭스가 유대 여자인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25 바울이 정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해서 말할 때에, 벨릭스는 두려워서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가시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당신을 부르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동시에 그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하고 은근히 바랐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27 두 해가 지난 뒤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두어 둔 채로 내버려 두었다.
바울과 벨릭스 사이에는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있었음이 알려진다. 아내 드루실라는 유대 여자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서 ‘궁금했다’고 말한다. 이로써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이 복음 앞에 나아와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는데서 이 장면이 보여주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바울이 정의와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할 대 벨릭스는 ‘두려워’한다. 참된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지 않는 영혼은 이 심판의 일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그치고 말았으니,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와 기쁨에 대한 소식을 온전히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벨릭스는 이전에도 지적했던 것처럼 천민 출신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초월하지 못한 잔인한 모습들로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샀었다. 그런 천박함이 오늘 이 장면에서도 등장하는데, 바울에게서 금품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은근히 바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자주 불러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금품을 통해서 바울을 석방해줄 수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 했겠지만, 바울은 자신이 풀려나는게 목적이 아니다. 심지어 돈이 있었더라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복음을 로마에 전하기 전까지 이 법정에 있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총독 베스도가 후임으로 오게 된다. 벨릭스는 후임자에게 바울에 대한 일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베스도는 벨릭스와는 다르게 상당히 능숙하게 통치를 시작한다. 가이사랴에서 유대인들의 심리적 수도인 예루살렘을 곧바로 방문해서 산헤드린을 만나 민심 확인절차를 시작한다.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줄곧 졸랐다.
3 그들은 그에게 제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길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다.
4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도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5 “그러니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를 고발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바울을 고발하였다. 2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바울을 없앨 계획을 잊지 않았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불려 올라와서 재판을 받도록 만들면 길에서 바울을 죽일 계획을 한다. 이것은 이전에도 동일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음모를 꾸미면서도 왜 그들의 계획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히 느헤미야 시절에 산발랏의 계략에 따라 느헤미야가 성전에 올라갈 때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민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 이스라엘의 반역자인 산바랏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베스도는 그들의 계획에 따라주지 않는다. 일정은 베스도가 짜는 것이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이 짤 수 없다. 베스도는 다시 가이사랴로 갈 것이고 이 문제가 급하다면 가이사랴로 가서 재판을 열면 될 일이다. 공식적 법적 절차에 따라서 판결은 진행될 것이다. 그들의 음모는 언제나 실패하고 하나님의 보호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6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여드레인가 열흘인가를 지낸 뒤에,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석에 앉아서, 바울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7 바울이 나타나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걸어서 고발하였으나,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8 바울은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가자마자 바울에 대한 재판을 재개한다. 바울의 등장에 예루살렘의 유대 사람들은 바울을 에워싸고 위협적으로 죄목을 걸어서 고발했다. 하지만 시간도 이미 2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증거’를 가지고 고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이전에도 증거가 불충분했는데, 시간이 지난 사건에 증거를 가지고 재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그들의 고발은 이전의 고발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 변호하면서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해서조차 아무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황제’를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의도적으로 ‘황제’가 언급됨으로써 재판은 ‘황제’를 향하여 가게 된다. 바울은 바로 이것이 이 재판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야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로마의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이 이 일로 얻게될 어떤 어려움과 불편감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2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가 그나마도 편한 가택연금상태에 놓여있었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감금상태가 결코 좋을리가 없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오직 이 복음을 로마에 전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 때문이다.
9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에게 묻기를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지 않소?” 하였다.
10 바울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황제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나는 유대 사람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11 만일 내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 사형을 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하였으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고발하는 이 사람들의 고발 내용에 아무런 근거가 없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나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12 그 때에 베스도가 배심원들과 협의하고 “그대가 황제에게 상소하였으니, 황제에게로 갈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더 이상의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바울을 계속 심문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치적 이해’만 남았다. 베스도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싶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재판을 받을 것인지 질문한다. 질문은 아마도 바울의 ‘의사’를 물으려는것보다는 결정에 대한 통보일 뿐이었을 것이다. 베스도가 굳이 바울의 의견을 물을리는 없다. 그럼에도 바울의 ‘로마 시민권자’ 라는 사실이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항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을 열면된다. 하지만 그 재판정이 결코 바울에게 우호적일 수는 없다. 베스도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을 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재판받는 이유가 유대교 율법과 관련되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계속해서 재판을 받아야한다면 ‘황제’와 관련된 것이어야 하는데, ‘황제’에 관한 재판을 산헤드린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적절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바울은 지금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곧 황제의 권한 아래있는 정당한 재판이며, 마침내는 황제에게 가서 재판받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것처럼 바울의 선택은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기준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일신과 환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도 좋다. 갇혀있든지, 자유로워지든지 선택을 위한 근거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이고 그것이 곧 ‘복음’ 전하는 일이다. 우리 시대에 복음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을까. 기독교에 대한 열심이 물질적 성공과 건강 등에 매몰되어 있는 ‘종교중독’ 증상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바울과 그런 삶은 전혀 상관이 없다. 바울은 용맹하게 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이 복음을 선택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강력한 계획들도 모든 상황을 관리하시는 주님 앞에 무효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편이 더욱 참된 기쁨과 만족스러운 열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은혜를 사모하고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