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취약한 계층이었는가를 언급했었다. 아이들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영아살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알려져있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은 계층상으로는 하찮게 여겨질만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꾸짖음은 최하계층의 아이들이 앞으로 왕이되셔야 할 분이신 예수님께로 다가와 만져짐을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분노는 단지 아이들을 막아서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 즉, 제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포함되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고 하시며 그들을 안아주시고 축복하신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은 어떤 왕이 되시려고 하시는지 보여주신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기꺼이 그들을 안아주시며 그들에게 축복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영원한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생애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구원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고, 그에대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얻어야 하는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런측면의 발전된 논의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 사람이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행동’을 예수님께서 지시하기 시작하실 것이다.
일단 예수님은 자신을 향하여 ‘선하다’ 라고 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신다. 아직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에 대한 영원하신 ‘신성’에 대해서 인식할 수 없다. 그 예로 그는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만이 선하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의 ‘선함’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어있으며, 그의 행동에서 ‘선함’의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19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20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토라의 핵심 십계명을 언급하신다. 경건한 사람이었을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노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는 이것이 영생을 얻는 조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한 것은 혹시 이것으로 부족하진 않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두려움이었을 수 있다. 제 아무리 선한 삶을 살려고 애써봐도 자신 안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면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려서부터 다 지킨 율법은 더욱더 과도한 옥쇄가되어 자신을 옭아매어와야 정상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스럽게 보신다. 그의 내면을 보시는 분께서 그 사람의 고백이 진실하심을 나타내는 말이고, 그가 위선적인 인물은 아니라고 보여주는 말이다. 따라서 그가 ‘선함’에 대한 오해가 ‘행동’으로부터 입증할 수 없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늘의 보화를 차지하는 영생을 얻고 따르라고 말슴하신다. ‘따르라’는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재산이 많은 탓에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는 ‘행동’으로 ‘선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선함’이 자신의 행동과 능력으로 ‘부가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함’의 기준, 하나님의 선하심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에서 어린아이 같이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까지 기꺼이 기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분은 하늘의 영원한 보화들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명예와 가치들을 버리심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셨다. 이로써 고아와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며 복 주시며 은혜 베푸시길 기뻐하셨다. 제자로 부르시는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었던 정말 가까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것을 예수님처럼 기꺼이 버리고 따르며 헌신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눔과 베품, 환대의 삶을 살아가기를 다시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