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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법 / 마가복음 10:23–3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의 말씀에 놀랐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예수님의 둘러보심은 주변에 있는 제자들의 표정 또한 심상치 않았음을 예상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선을 그으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깜짝 놀란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 그리고 예수님이 되시길 원하는 ‘왕’의 형태는 국가의 수장이며 권세와 부와 권력을 차지한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부’로 들어갈 수 없다면 그 국가는 무엇으로 움직이며 운행될 것인가?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이 바라는 형태의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다. 낙타가 발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동물에 속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언급하는 잠언의 방식이다. 그러니까 ‘어렵다’ 수준을 아득히 넘는 ‘불가능’한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6 제자들은 더욱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제자들의 ‘놀람’은 더욱 ‘놀람’으로 변한다.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해석되는 문화에서 부자가 구원받을 수 없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제자들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을 고려했고 이 관점에서는 도무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다.
제자들이 생각했던 복과 은혜의 영역인 ‘부와 건강’을 소유하는 것이 기적이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방식이 그들이 생각한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불가능한’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어떠한 능력으로도 불가능한 것들이 하나님께는 ‘가능’한 영역으로 완전히 전환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에 달려있다는 말이 된다. 이전에 나왔던 모든 부정한 사람들, 불가능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이 방식으로 재해석이 가능해진다.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으로 ‘불가능’한 것들 조차도, 하나님의 방식에서 ‘가능’하게 바뀔 수 있다. 그 급진적인 예시를, 저주에서 끌어 올려 바꾸시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부활’로 선명히 보여주실 것이다.
28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30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말한다. 예수님의 엄중한 기대에 미쳤다는 말이며 인정받을 만한 행동이었음을 알아달라는 요청이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리와 위치가 천국에 이미 내정되어 확보된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드로와 제자들이 정말 ‘모든 것을 버렸는가’ 질문해봐야한다. 또 그것이 핵심적인 포인트도 아닐 것이다. 만약에 베드로가 정말 그렇게 여겼다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자신들의 그물을 버린 후에도 그들의 집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베이스캠프로 사용하신 장소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살았고, 고침을 받았으며 예수님의 사역이 십자가에서 마감된 후로도 베드로는 갈릴로 돌아가서 물고기를 잡을수도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버림’은 재산을 완전히 처분하는 일이나 가족의 유대 관계를 전적으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례 사역 기간 동안 가족과 소유물을 뒤에 둔 채 잊어야 함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금욕적인 가난’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실용적으로 소유물과 가족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핵심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렇게 ‘버림’은 곧바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영광과 복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 행위는 ‘박해’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로 살아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는 ‘손해와 이익’이 섞여있는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버리신 분의 뒤를 따라가는 이들이 받게될 ‘모든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기적적인 하나님 나라의 입성은 받아야할 모든 박해를 아득히 갚고도 남는다.
우리는 여전히 오늘의 본문 속에서도 구원의 놀라운 사건이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확인한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세상적 왕으로써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꺾지 않고 있으며 예수님이 오르실 왕국에서 자리를 차지하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생각들을 누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식으로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기적적으로 끌어올려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 은혜의 구원을 온전히 사모하고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