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신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살펴 봅시다.”
37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38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39 그래서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
40 그러나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신도들로부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사를 받고서, 길을 떠났다.
41 그래서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아다니며, 모든 교회를 튼튼하게 하였다.
바울은 바나바에게 이미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로 다시 찾아가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13-14장에서 바울이 죽음의 위기에서도 다시 되돌아가 교회를 찾아 성도들을 돌봤었다. 따라서 바울이 준비한 선교사역은 첫번째 선교지들을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려가고 싶어한다. 우리는 골로새서를 통해 바나바와 마가가 사촌지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가가 이전의 선교에서 선교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가가 한번의 실수로 선교여행에서 하차했고 다시금 이 선교 사역을 통해서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오히려 바울과 바나바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고 말았다. 바울과 바나바는 심하게 다툰다. 그럼에도 이 갈등이 교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큼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가 안디옥교회에서 은혜로운 파송을 받고 떠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울과 실라 일행은 이전의 교회들을 돌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한다.
1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3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생각해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5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
우리는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가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바울은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다. 따라서 특별한 기억이 있는 곳일 것이다. 그곳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디모데다. 디모데는 아버지 쪽으로 그리스 사람이었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디모데는 이방인임과 동시에 교회에서 칭찬받는 인물이었다. 우리는 이미 어머니가 ‘신자’ 라고 불린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미 바울의 사역 속에서 회심을 경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디모데후서에 따르면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가 깊은 신앙인으로 회심을 경험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향 아래 디모데도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우리는 바울이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지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아주 강력하게 호소해왔다는 점을 기억해볼 때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누가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에 대해서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즉, 그가 할례를 행함으로써 유대 사람들의 방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런 권면과 행위는 우리에게 ‘율법’이라고 하는 틀 자체를 폐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율법을 ‘기능’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례 ‘행위’와 율법적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구원]과 연결할때 오류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할례를 받지 않게 할 이유가 없었다. 디모데는 이방인의 문화를 소유함과 동시에 유대인으로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하게 된다.
6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7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야기는 다른 지역으로 선교로 확장된다. 선교 지역의 결정은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안디옥교회 최초의 선교가 성령께서 시작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사도바울의 계획과 일정이 있었고, 그것으로 바나바와의 갈등도 있었다. 그런 바울의 단호한 계획조차 ‘성령님의 계획’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막으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꿈과 환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본문은 두 번이나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려는 시도를 막으셨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의 환경에서 어려움과 박해가 공식적으로 일어났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이 선교의 여정이 성령께서 주장하고 계심은 분명하다. 그것이 현장에서의 경험이나 환상적 경험이나 그 무엇이든지 바울이 확신하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으로 인정한다.
이제 본문이 또 한가지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우리는’ 이라는 표현이다. 이제 이 여정에서부터 누가가 함께 동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 환상에 대해서 바울, 실라, 누가, 디모데가 함께 인정하며 마케도니아 사역이 일어나게 된다.
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4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15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정은 드로아에서 사모드라게, 이튿날 네압볼리로, 그곳에서 빌립보에 이르르게 된다. 본문은 빌립보를 마케도니아 지방의 으뜸가는 도시, 로마 식민지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식민지’라는 표현의 부정적 의미를 곧바로 떠올리지만 사실 당시의 빌립보가 가지는 식민지로서의 명성은 영광스러운 칭호였다. 으뜸가는 도시라고 불렸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빌립보는 은퇴한 퇴역군인들이 주 구성원인 도시로써 유스 이탈리쿰이라고 불리면서 작은 로마로 불렸다. 그래서 로마가 가지고 있던 모든 혜택을 다 누리는 도시였다. 따라서 빌립보가 사역의 시작점이 된 것은 당연했다.
바울 일행은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 장수를 만나 그녀의 집안이 회심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도니다. 루디아에 대한 다양한 출신의 학설들은 있지만, 바울일행을 집안으로 들여 지내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집을 소유한 부유한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또한 남편과 무관하게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도 그녀가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의 회심을 통해서 마케도니아 지역의 선교가 열린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인간적 연약함과 방해와 갈등들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선교는 결코 멈춤이 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일들조차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아래 교회가 확장되고 있으며 땅 끝을 향해 복음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들어가시고 이끌어가시는 선교에 실패란 없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 선교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오늘 말씀 묵상하며 하나님의 선교 도구로 사용되길 구하고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