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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끝나지 않는 이야기 / 예레미야 26: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끝나지 않는 이야기 / 예레미야 26: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나 주가 말한다. 너는 주의 뜰에 서서, 내가 너에게 전하라고 명한 모든 말을,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주의 성전에 경배하러 오는 사람에게,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일러주어라.
3 혹시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각자 자신의 악한 길에서 돌아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내가, 그들의 악한 행실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기로 작정한 재앙을, 거둘 것이다.
4 너는 나 주가 한 말을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준 법에 따라서 순종하여 살지 않으면,
5 내가 거듭하여 보내고 너희에게 서둘러서 보낸 내 종 예언자들의 말을 너희가 듣지 않으면,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 만민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겠다.’ ”
여호야김이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이제 유다의 운명도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때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주의 뜰’, ‘주의 성전’에 경배하러 오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전하라는 말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설 자들’에 대해서 생각하신다. 그들에게는 내리기로 작정한 재앙을 거두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법에 따라 순종하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세상 만민의 저줏거리’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가 ‘슈브’ 인데, 예레미야와 선지서에서 강조되며 반복되는 아주 중요한 단어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돌아오라’고 수없이 반복해 외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맺으신 약속의 영역에서 변함이 없으시다. 약속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시다. 반대로 말하면 그 ‘언약’ 체결에서 맺어진 형벌과 심판에 대해서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개’할 때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바꾸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인자하심을 무시하고 상관없이 대하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도, 그 말씀을 듣지도 않음으로써 스스로 저주의 대상 되기를 선택한다.
7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은 예레미야가 주님의 성전에서 선포한 이 말씀을 다 들었다.
8 이와 같이 예레미야가 주님의 명대로, 모든 백성에게 주님의 모든 말씀을 선포하니,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너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9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을 빌려, 이 성전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멸망하여 여기에 아무도 살 수 없게 된다고 예언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예레미야를 치려고,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10 유다의 고관들은 이 소문을 듣고, 왕궁에서 주님의 성전으로 올라가, 주님의 성전 ‘새 대문’ 어귀에 앉았다.
제사장, 예언자들, 온 백성이 성전에서 선포한 이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의 설교는 어떤 명절이나 특별한 시기에 선포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폭발적인 이들의 반응을 통해 예레미야를 ‘죽음’으로 경고하는 모습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한 죽음’으로 예레미야를 겁박한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성과 성전을 결코 버리거나 파괴하지 않으시리라고 하셨던 말씀들을 모조리 폐기하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며, 거짓 예언자는 ‘죽여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듣고자 했던 메시지의 내용 또한 유추해볼 수 있는데, 그들은 거룩한 도시와 성전’은 언제나 ‘평강’과 안전과 보호 속에 있으며 영광스러운 도성은 온 세계 만방 가운데 영광을 받도록 높여져야 한다.
그들은 그 성전은 ‘에덴’의 모형일 뿐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에덴, 원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착각은 지금의 성전이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식으로 무너지고 세워진 성전을 향해 예수님께서 무너지리라고 예고하실 때도 그들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예수님을 ‘성전을 무너뜨리려는 자’로 고발하려고 했다. 사실 참된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셨는데도 말이다.
예레미야의 선포에 온 백승은 예레미야를 실재로 ‘타격’ 하기 위해서 그 주위로 몰려 들었고, 유다의 고관들은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가 ‘새 대문 어귀’에 앉는다. 결국 예레미야의 말들은 국가와 나라의 번역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위험’한 발언들이며, 그에게 ‘사상검증’을 시도할 것이다.
11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그 고관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귀로 들으신 바와 같이, 그는 이 도성이 멸망한다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12 그러나 예레미야는 모든 고관과 온 백성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러분이 들으신 모든 말씀대로, 이 성전과 이 도성에 재앙을 예언하라고,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행동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고,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14 나는 여러분의 손에 잡혀 있으니, 여러분이 보시기에 좋으신 대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자신과, 이 도성과, 이 도성의 주민은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린 죄값을 받을 것이니, 이는 이 모든 말씀을 여러분의 귀에 전하도록 나를 보내신 이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거침없이 예레미야를 고발한다. 예레미야는 ‘사형 선고’를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사형선고 이유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작정’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보호하실거라고 착각한다. 우리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듯이 계약의 파기는 ‘이스라엘’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키시고자 하셔도 계약이 파기되었다면 그 계약파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의고 공의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이 성전과 도성에 재앙을 예언하라고 ‘주님께서’ 보내셨다고 말하면서 ‘행동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고 순종’ 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앞선 구절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비로소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나눴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또한 순종할 때, 돌이킬 때, 재앙을 거두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담대하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미 붙잡혀 있으므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처리하라고 말한다. 예레미야가 죽는다면, ‘무죄한 사람의 피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한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장면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거짓 선지자’가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의 ‘평강’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평강’을 외치는 것이 ‘중독’과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문제를 도려내고 고치지 않으면 우리는 심각한 쇠약증세에 시달릴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완전 의존된 상태에 살게 될 것이고 이 깊은 우상숭배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값을’ 치르기 전에 우리 하나님께 돌이킴이 중요하다. 우리가 돌이킬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고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우리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주님께 되돌아간 인생 살길 간절히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