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합의 아들 일흔 명이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다. 예후가 편지를 써서 사본을 만들어,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의 관리들과 원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냈다.
2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상전의 아들들을 데리고 있다. 병거와 말과 요새화된 성읍과 무기도 가지고 있다. 이제 이 편지가 너희에게 가거든,
3 너희는 너희 상전의 아들들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적합한 인물을 찾아서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앉히고,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상전의 가문을 편들어서 싸우도록 하여라.”
4 이에 사마리아의 지도급 인사들은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저 두 왕도 그를 당하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와 맞설 수 있겠소?”
5 그리하여 왕가를 지키는 사람들과 성읍을 다스리는 사람들과 장로들과 왕자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예후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우리는 장군의 신하입니다. 장군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그대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왕도 세우지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십시오.”
아합의 아들 일흔 명은 직접적인 아들만이 아니라 그 자손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있는 관리들과 원로들, 아합의 아들들을 보호나는 사람들에게 첫번째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의 내용은 아합 가문에 충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 ‘예후’에게 맞서 싸울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하나의 역설적인 언사이기 때문이다. 싸울 힘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과연 싸울 힘이 있느냐는 반문이고 역설이다. 가장 훌륭하고 적합한 인물을 앉히기 위해서 70명 중에 고르려고 한다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이미 아합의 가문은 와해가 정해져있다.
사마리아 지도급 인사들은 그런 상황을 이미 인지했고, 자신들이 싸울 힘이 없으며 오히려 아합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혀 ‘제거될 운명’에 처했음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후에게 장군의 ‘신하’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맞서 싸울 의사가 전혀없다는 것을 말한다. 장군의 ‘보시기 좋은 대로’ 하라는 말은 전적인 주권이 예후에게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6 예후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편지를 써서 보냈다.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명령을 따르겠다면, 너희 군주의 아들들의 목을 베어서, 내일 이맘때까지, 이스르엘에 있는 나에게로 가져 오너라.” 그 때에 왕자들 일흔 명은 그들을 키워 준 그 성읍의 지도자들과 함께 있었다.
7 편지가 성읍의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자, 그들은 그 왕자들을 잡아서 일흔 명을 모두 죽인 다음에,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서,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 보냈다.
8 전령이 와서 예후에게, 그들이 왕자들의 머리를 가져 왔다고 알리니, 예후가 말하였다. “그 머리들을 두 무더기로 나누어, 아침까지 성읍 어귀에 두어라.”
예후는 두 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70명의 아들들의 목을 베어 이스르엘로 오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끔직한 살육이었음이 틀림없다. 그 자손들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행해지지 않으면 사마리아는 꼼짝없이 위기에 처하고 더 큰 위험이 찾아올게 뻔했다. 그래서 70명의 아합 가문의 아들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된다.
예후는 그 머리들을 두 무더기로 나누어 아침까지 성읍 어귀에 두라고 명령한다. 이제 이것은 하나의 ‘증인’이자 ‘증거’가 될 것이다.
9 아침이 되었을 때에, 예후는 나가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옛 주인에게 역모를 꾀하여, 그를 죽였습니다. 백성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 모든 사람은 누가 죽였습니까?
10 백성 여러분은 아합의 가문을 두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종 엘리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11 그런 다음에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쳐죽였다. 또 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예후는 아침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 역모의 주체이며 살육을 행한 사람이므로 ‘백성’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백성들의 ‘죄책감’을 씻어버린다. 동시에 이 역모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정당성을 부여한다. 예후의 말이 일정부분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부분은 매우 교묘한 정치수단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예후에게로 돌리고, 극단적으로 말씀을 밀어붙여서 정치적 학살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쳐죽인다. 가문 관리들, 친지들, 제사장들까지 살육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분명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바알’ 신앙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정의고 국가의 통치 전략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밑에 있었던 백성들이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들은 아합에게 전적으로 동조한것이 아니었는가? 백성들이 암묵적으로 바알 숭배에 동참했다는 것은 엘리야의 갈멜산에서부터 이미 지적되어 왔었다. 따라서 그들의 죄과가 이런식으로 ‘아무일도 없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예후의 발언과 정치적 학살은 ‘전적인 하나님의 명령 수행’과는 결이 다른 형태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2 그 다음에 예후가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에 이르렀다.
13 예후는 거기에서 이미 살해된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만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들로서, 이세벨 왕후와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을 드리러 내려왔습니다.”
14 그러자 예후는 그들을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들을 생포하여, 벳에켓의 한 구덩이에 넣어 죽였는데, 무려 마흔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15 예후가 그 곳을 떠나서 가다가, 그를 만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났다. 예후가 그에게 안부를 물으며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진심으로 믿듯이, 그대도 그러하오?” 그러자 여호나답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예후는, 그렇다면 손을 내밀라고 하였다. 그가 손을 내미니, 그를 수레에 올라오게 하였다.
16 그런 다음에 예후가 말하였다. “나와 함께 가서, 주님을 향한 나의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도록 하시오.” 예후는 여호나답을 자기의 병거에 태워 나란히 앉았다.
17 그리고 그는 사마리아에 이르러서, 거기에 남아 있는 아합의 지지자를 모두 죽였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에 이르러서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만나 그들을 살육한다. 그리고 떠나가는 길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다.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여호나답의 역할은 오로지 예후의 이 일에대한 ‘정당성’을 증언하는 일이다. 레갑 족속에 대한 이야기는 예레미야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 연관관계가 뚜렷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히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예호와 손잡고 수레에 올라옴으로써 예후의 일에 확실한 지지와 동참을 보인다. 그리고 예후는 여호나답에게 하는 말을 통해 자신의 반역이 일어난 이유와 목적을 설명한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나의 열심’ 이다. 예후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사마리아에있는 아합의 지지자를 모두 죽였다.
오늘 본문의 시작에서 그들은 이미 두려워하고 아합의 자녀들을 죽였지만, 그의 살육의 범위는 아합의 가문 전체, 그들을 섬기고 따랐던 사람들 전체를 포괄한다.
우리는 예후가 엄청난 정치적 결단과 실행력을 가지고 아합의 가문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극단적 순종이 과연 정당하고 온당하게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인가, 예후에게 조금의 잘못도 없을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일의 본문에서 그도 역시 여로보암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 결국 ‘자신이 왕’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란 명분이 있었지만, 그 속에 감춰진 탐욕은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확대된 살육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내밀한 욕망을 하나님 앞에서도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욕망은 어느새 드러나 우리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행위는 언젠가 부패하고 다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우리의 내밀한 욕망조차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길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목사님- 이번 유스원크라이 진행건으로 후원 요청드리며 공문 보내드립니다~^^; 직접 드려야하는데 이렇게 드려 죄송합니다.
이번 집회부터 익산청년연합에서 모든 진행 콘티와 스텝을 섬기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역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회를 연합사역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청년들이 계속 기도모임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계속 관심가져주시고 지도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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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