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여호아스 제 이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유다 왕이 되었다.
2 그는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호앗단은 예루살렘 태생이다.
3 아마샤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만큼은 하지 못하였고, 아버지 요아스가 한 것만큼 하였다.
4 그리하여 산당은 제거되지 않은 채로,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하고 있었다.
5 왕권을 확고하게 장악한 다음에, 아마샤는 부왕을 살해한 신하들을 처형하였다.
6 그러나 그는 처형한 신하의 자녀는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서에 기록된 말씀을 따른 것이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자녀 대신에 처형되어서도 안 되고, 또 자녀가 아버지 대신에 처형되어서도 안 된다. 오직 각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에 따라 처형되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이 있다.
아마샤는 긍정적인 왕이긴 하지만, 열왕기에서는 상당히 무능력한 왕처럼 보이게 나타난다. 또 여호아스가 더 강조되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여호아스에게 약속하신 시리아를 물리치는 일의 정당성과 성공이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기는 하지만, 아버지 ‘요아스’ 만큼 했다고 언급한다. 요아스가 반절의 성공, 그러니까 여호야다 시기 까지는 훌륭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 ‘절반의 성공’으로 묘사되는 것같다. 그래서 산당이 제거되지 않음과 전쟁의 실패를 강조하게 될 것이다.
본문은 왕권을 강화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부왕을 살해한 신하들을 처형한 장면이다. 이것은 정당성으로는 우상숭배하려는 왕을 제어한 의도를 발견함에도 정치적으로는 쿠데타에 대한 당연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고대 당시에 행했던 연좌제는 실행하지 않는데 신명기 24장에 등장하는 명령에 따라서 수행하고 있는 거슬 보게 된다.
7 아마샤는 ‘소금 계곡’ 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쳐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점령한 다음에, 그 이름을 욕드엘이라고 하였는데, 오늘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8 그 때에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서로 직접 만나 힘을 겨루어 보자고 제안하였다.
9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은, 유다의 아마샤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회답하였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백향목의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청혼하는 것을 보고,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 그 가시나무를 짓밟은 일이 있다.
10 네가 에돔을 쳐서 이기더니, 너무 오만해진 것 같다. 차라리 왕궁에나 머물면서, 네가 누리는 영화를 만족하게 여겨라. 어찌하여 너는, 너 자신과 유다를 함께 멸망시킬 화근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냐?”
아마샤는 에돔 사람과 셀라를 치게 되는데, 이전 본문들에서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 영향력을 잃었던 땅들을 회복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인정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역대기를 보면 에돔을 치고 돌아오면서 그들의 신에게 경배한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아마샤는 계속해서 ‘절반의 성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일부의 충성’으로 모든 정치역학적 상황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안일한’ 처사였다. 아마샤는 자신의 성공을 기반으로 여호아스와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역대기는 이런 전쟁선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치시려는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여호아스는 예화를 들면서 교만하여져서 스스로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경고한다. 이런 예화를 통한 경고는 성경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우화적 성격으로 인해 아마샤가 얼마나 ‘미련하고 오만한 자’처럼 행동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11 그러나 아마샤가 끝내 듣지 않자,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이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를 맞아, 유다의 영토인 벳세메스에서 대치하였다.
12 그러나 유다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도망하였다.
13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은 벳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요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의 아마샤 왕을 사로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사백 자를 허물어 버렸다.
14 그는 또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과 모든 그릇을 약탈하고, 사람까지 볼모로 잡아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결국 아마샤는 여호아스에 패배하게 되고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는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된다. 또한 성전의 보물과 금과 은이 약탈되고 사람들까지 볼모로 사로잡히게 된다.
역대기는 더욱 정확하게 아마샤가 경고를 무시했다고 말하며 그 반응이 마치 ‘바로’와 같았음을 암시한다. 아마샤의 마음이 굳어지게 만들어버리셨다.
외면적으로 그는 세계 정치, 군사적으로도 열세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여호아스와 그 아들 여로보암시대는 북이스라엘이 중흥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회복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앗수르’가 잠시 세력이 약해지고 시리아를 상대로 상당한 승리를 얻었기 때문인데, 이때의 선지자였던 요나도 그러한 상황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은 세력이 확장되고 커지고 있는 북이스라엘에게 함부로 덤벼들면 안된다는 사실이 인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의 어두움은 자신의 절반의 경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 아버지 요아스가 성전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면, 아마샤는 정치 군사적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15 여호아스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누린 권세와, 그가 유다의 아마샤 왕과 싸운 일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16 여호아스가 죽으니,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안장하였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열왕기는 여호아스의 죽음과 여로보암의 등극을 아마샤의 죽음 이전에 배치한다. 시대상으로도 물론 여호아스의 죽음이 이르지만, 이후 아마샤의 행적이 반역으로 끝난다는 점, 아무런 외연적, 신앙적 성공이나 실패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여호아스에게 ‘종속’ 되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결국 우리는 ‘절반의 성공’은 결국 ‘실패’와 동일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우리의 믿음의 결단이 아무리 ‘일부의 성공,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하여도 그것이 좋은 결과로 늘 언제나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일부의 성공,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전적인 헌신과 사랑으로 온전한 믿음의 성공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