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유다의 요아스 왕의 아들 아마샤는,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 왕의 아들 여호아스가 죽은 뒤에도 열다섯 해를 더 살았다.
18 아마샤의 나머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19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라기스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그를 죽였고,
20 그의 주검을 말에 싣고 와서, 예루살렘 안의 ‘다윗 성’ 에 그의 조상과 함께 장사지냈다.
아마샤는 여호아스의 죽음 이후에도 15년을 더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이 통치가 실재적인 통치행위였는지는 의문스럽다. 지난 본문에서 지적한것처럼 북이스라엘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고, 아들과의 공동통치 내지는 섭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
이미 전쟁의 실패로 인해서 민심을 잃어버렸을 가능성도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어쨌든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한다.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에 장사지내게 된다.
21 유다의 온 백성은 아사랴를 왕으로 삼아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22 아마샤 왕이 죽은 뒤에, 아사랴는 엘랏을 재건하여 유다에 귀속시켰다.
이제 통치는 아들 아사랴로 이어진다. 그가 왕이 될 때가 16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마도 아마샤와 공동통치 또는 섭정 기간의 시작이 16세였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역대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아사랴의 다른 이름은 ‘웃시야’ 이다. 이제 시대는 점점 멸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예언자들은 부패한 왕들과 백성들에 대한 고발과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서 경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아사랴 (웃시야), 요담과 여로보암 시대가 다윗왕조의 가장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회복한 시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와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23 유다의 요아스 왕의 아들 아마샤 제 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다.
24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25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하였다. 이것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종인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 예언자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왕에게 하나님은 ‘구원과 풍성함’을 제공하신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25절은 우리가 잘아는 요나가 등장한다. 요나는 이스라엘이 하맛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요나의 예언과 성취가 보여주는 것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주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의 본문들에서 함께 지적했던 것처럼 ‘땅을 허락하시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일하심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도적인 일하심은 다만 이스라엘의 능력과 상관없이 세계질서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점도 포함된다. 지난 본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여로보암시대에는 앗수르(앗시리아)와 아람(시리아) 세력이 매우 약해져있을 때였다. 따라서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과 웃시아요담의 남유다는 전성기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이 평화와 번영을 일군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요나가 그토록 시대를 관통하는 예언을 할 수 있으면서도 ‘니느웨’로 가기 싫어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님은 앗시리아를 회개시켜서 이스라엘의 악을 징벌하실 것임을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에 일하던 선지자들인 호세아와 아모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배도는 바람피우는 아내와 같고, 정의와 공의를 저버린 고위 공직자들, 사랑을 잃고 서로를 착취하는데 여념이 없는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번영은 ‘허용’일 뿐이다.
26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난이 너무 심하여, 매인 사람이나 자유로운 사람이나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아, 이스라엘을 돕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다.
27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없애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을 시켜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28 여로보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전쟁에서 보인 능력과, 유다에 속하였던 다마스쿠스와 하맛을 이스라엘에게 되돌려 준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인 이스라엘의 왕들과 함께 누워 잠드니, 그의 아들 스가랴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우리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마지막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난’이 너무나 심하다고 보셨다. 이것은 영적인 고난 뿐 아니라, 그들 안에 이뤄진 사회적 오염도와 착취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선지자들을 통해서 지적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악에도 하나님은 당장에 이스라엘을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여로보암을 통해 구원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 때문이었다.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찬란한 흥왕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들에게 예언자들도 보내시고, 그들의 고통을 들여다 보시며, 그들의 고통을 경감하시기 위해 이방 나라들의 힘도 제어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왕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했다. 풍요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들의 ‘욕망과 욕구’에 충실했다. 이것이 이들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고 말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허용하심 속에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파멸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 겸손함과 회개가 필요하다. 오늘 주님의 마음 알기를 간절히 바라고 구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35111-3234-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