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 이십칠년에 유다의 아마샤 왕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었다.
2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쉰두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골리야는 예루살렘 태생이다.
3 그는 자기의 아버지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4 산당만은 제거하지 않아서, 그 때까지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하였다.
5 그리하여 주님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왕은 죽을 때까지 나병 환자가 되었고, 격리된 궁에서 살았다. 왕자 요담이 왕실을 관리하며 나라의 백성을 다스렸다.
6 아사랴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7 아사랴가 죽어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다윗 성’ 에 조상과 함께 장사지냈다. 왕자 요담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아사랴, 우리가 역대기에서 읽을 수 있는 이름은 웃시야다. 아사랴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지만, 산단을 제거하지 않음으로써 올바른 예배를 회복하지 못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그가 ‘나병환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 약간 다르게 설명한다. 열왕기는 ‘산당의 제사를 없애지 않아서’ 라는 것이고 역대기는 ‘스스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라고 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가지의 설명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이유는 성전이 세워지기 전, 하나님께 예배드릴 방법이 없을 때 임시적이고 불완전하게 드려졌던 방식이다. 그러나 성전이 세워진 후에도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이유는 ‘스스로의 편리’ 때문이고, 허락받은 제사장을 통하지 않은 ‘직접적 제사’가 이유일 것이다. 여러모로 ‘직접 드리는 제사는 비용과 시간과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다. 예배가 오염되는 것이다.
아사랴, 역대기로는 웃시야가 ‘스스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려고 한 것’ 또한 자신의 강력해진 왕권에 대한 공고함이며 제사장 권력에 대한 견제, 제정일치의 효과 등등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왕의 직접적 제사를 통해 비용, 시간, 노동력을 넘는 ‘힘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산당의 예배의 범죄가 왜 그렇게도 중요하게 다뤄졌는지 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편리’에 따라, 시간과 비용과 노동력을 계산하여 드릴 수 있는게 아니다. 예배는 오로지 받으시는 분이 ‘기뻐하실 수 있는 방식, 방법, 요소’들로 드려져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전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8 유다의 아사랴 왕 제 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다스렸다.
9 그도 또한 조상이 한 것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역모를 꾀하여 백성 앞에서 그를 죽이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11 스가랴의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12 주님께서 예후에게, 그에게서 난 자손이 사 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참아주심과 인내의 시간이 끝났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셨던 사 대 까지의 왕위 보존 약속은 그쳤다. 하나님께서 ‘사 대’를 약속하신 것을 단지 ‘사 대’만 유지시켜 주시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작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 대수를 늘이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실행했을 때 돌아올 은혜였다. 우리는 그런 예시를 아합을 통해서도 발견하게 된다.
어쨌든 스가랴가 왕이 되었지만, 살룸의 역모를 이기지 못하고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된 반역으로 국력을 완전히 소진하고 앗시리아에 의해서 집어삼켜지게 될 것이다.
13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유다의 웃시야 왕 제 삼십구년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한 달 동안 다스렸다.
14 그 때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거기에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15 살룸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역모를 꾀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16 그 때에 므나헴은 디르사에서부터 진격하여 와서, 딥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죽이고, 사방 모든 곳을 공격하였다. 그들이 그에게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고 하여, 그는 그 곳을 치고,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죽이기까지 하였다.
살룸은 겨우 한 달을 통치했다. 그의 왕권을 과연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곧바로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왕이 되었다. 므나헴은 매우 잔혹하게 딥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죽이고 사방 모든 곳을 공격했다.고 말한다. 그의 잔혹성은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죽이기까지 했다고 나오는데, 이런 잔혹한 사실의 보고는 그 왕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라는 이스라엘의 정통성에서 한없이 떨어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미래인 아이들을 살육한다는 점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정 반대다. 우리는 가나안의 신들 중에 인신공양을 통해 승리와 풍요를 얻으려는 악신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었는데, 므나헴은 그 잔혹한 신의 현현이 된 것 같다.
17 유다의 아사랴 왕 제 삼십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열해 동안 다스렸다.
18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는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일생 동안 떠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그대로 본받았다.
19 앗시리아의 불 왕이 그 땅을 치려고 올라오니, 므나헴은 불에게 은 천 달란트를 주었다. 이렇게 한 것은, 그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 왕국의 통치권을 굳게 하려 함이었다.
20 므나헴은, 앗시리아 왕에게 바치려고, 이스라엘의 모든 부자에게 한 사람당 은 쉰 세겔씩을 바치게 하였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더 이상 그 땅에 머물지 않고 되돌아갔다.
21 므나헴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22 므나헴이 그의 조상과 함께 누워 잠드니,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므나헴의 통치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정통성을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무너뜨려나갔다. 그는 스스로 폭거를 통해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미래인 아이들을 죽여나갔다. 게다가 앗시리아 왕에게는 은 천 달란트를 바쳤다. 19절은 자신의 왕국 통치권을 굳게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그의 왕위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제공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사랴와 북이스라엘 왕들의 배신 역사를 보면서 ‘스스로 힘을 가진 예배자, 스스로 왕이 되려는 찬탈자’들을 보게 된다. 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권력과 힘을 차지하려고하는 인간군상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은 결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고 허락하셨던 힘과 땅과 권세들을 제한해나가신다. 그것이 육체적인 질병일 수도 있고, 이방나라들의 침략 일 수 있고, 재정적인 심각한 타격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사용하실 수있는 분께 온전한 복종으로 엎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삶의 주인이신 분께 엎드리기를 다시 간절히 바라고 선택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