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스라엘 자손을 사마리아에서 쫓아낸 앗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에 살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사마리아를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으며, 이스라엘 성읍들 안에 정착하여 살았다.
25 그들은 그 곳에 정착하면서, 처음에는 주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나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 풀어 놓으셔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셨다.
26 그러므로 그들이 앗시리아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우리를 사마리아로 이주시키셔서, 이 성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리로 이주한 민족들은 이 지역의 신에 관한 관습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신이 우리들 가운데 사자를 보내어, 우리들을 계속 물어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줄 압니다.”
27 그래서 앗시리아 왕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명을 그 곳으로 돌려보내어라. 그가 그 곳에 살면서, 그 지역의 신에 대한 관습을 새 이주민에게 가르치게 하여라.”
28 그리하여 사마리아로부터 사로잡혀 온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 그리로 돌아가 베델에 살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이야기의 발단은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고 그곳에 다른 민족들을 이주시키면서 발생한다. 이제 약속의 땅은 ‘이방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이방인들이 거주만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자신들의 새로운 땅’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땅은 여전히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가 살아있는 땅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사나운 사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물어 죽게 만드셨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결코 그 땅에서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된다.
이제 이주한 민족들은 왕에게 ‘이 땅의 신’의 관습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고한다. 그래서 앗시리아 왕은 이스라엘의 제사장 한 명을 돌려보내고 ‘주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가 과연 온전히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제사장이었는지 불투명하다. 또한 ‘베델’ 이라고 하는 곳을 왜 지정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은 ‘금송아지’가 있던 곳이다. 따라서 베델에 살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들, 그것이 정확한 방법의 예배는 아니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얼마나 ‘심각하게 부패되는가’를 보여주는 시작이다.
29 그러나 각 민족은 제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만들어 섬겼다. 그래서 각 민족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 안에서 만든 신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든 산당 안에 가져다 놓았다.
30 바빌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고, 구다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다.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으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그들의 자녀를 불살라 바치기도 하였다.
32 그러면서도 그들은 주님을 공경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산당 제사장을 뽑아 세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33 이렇게 그들은 주님도 경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잡혀오기 전에 살던 그 지역의 관습을 따라, 그들 자신들이 섬기던 신도 섬겼다.
34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옛 관습을 따르고 있어서, 주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그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
각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섬길 뿐만 아니라 ‘주님을 공경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을 공경하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경은 수많은 다른 신들중의 하나로써 공경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다원주의’, ‘혼합주의’에 빠진 신앙의 모습이다. 주님도 경외하면서 각자 출신 지역들의 관습을 따라 섬기던 신들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결가 주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서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그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은 철저히 무시된다. 우리는 앞서 ‘제사장이 가르쳤다’고 읽었지만, 그 제사장의 가르침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들은 참된 하나님의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35 옛날에 주님께서 야곱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시고 명하셨다. “너희는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절하지 못하며, 그들을 섬기지 못하며, 그들에게 제사드리지 못한다.
36 오직 큰 능력으로 팔을 펴시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그분 주님만을 경외하고, 그분에게만 절하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
37 주님께서 몸소 기록하셔서 너희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항상 지키고, 다른 신을 경외하지 않아야 한다.
38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못한다.
39 오직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만을 경외하여야 한다. 그분만이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40 그러나 그들은 이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의 옛 관습만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였다.
41 그리하여 이주해 온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또한 섬겼다. 그들의 자녀와 자손도 그들의 조상이 한 것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열왕기 기자는 다시금 야곱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결코 다른 신들을 경외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섬겨서도, 제사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십계명에서 곧바로 찾을 수 있다.
이 명령은 그 명령 자체로만 읽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는 그 약속의 땅으로 하여금 열방을 향해 ‘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섬김으로 얻는 무한하고 놀라운 영광스러운 ‘복’이 세상 전반으로 흘러나가 다른 신들은 모두 거짓이며, 오로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역은 오히려 ‘세상의 신들이 숭배받는 신으로 약속의 땅’을 침범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계획의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혼합’될 때, 그 처음은 ‘그럴싸하게 느낄 수 있음’을 인정할 수있다. 적당한 타협과 이성적인 판단은 적당한 혼합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 ‘배교’보다 더욱 심각한 방식으로 파멸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조차 하나님의 명령이 수행되고 있다고 ‘착각’ 하게 만들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적당한 타협’을 두렵고 무서운 것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셔야 하며, 올바른 경배의 대상으로써 유일한 사랑과 찬양을 올려드려야 한다. 우리의 삶이 ‘타협된 신앙’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 되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