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의 엘라 왕의 아들 호세아 제 삼년에,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
2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아비는 스가랴의 딸이다.
3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4 그는 산당을 헐어 버렸고, 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다. 그는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때까지도 느후스단이라고 부르는 그 구리 뱀에게 분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는데, 유다 왕 가운데는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많은 논쟁거리다. 그가 호세아 삼년에 히스기야 왕이 되었다는 설명과 9절에서 호세아 왕 7년에 살만에셀왕이 침공했다는 말이 연대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히스기야의 통치가 아버지 아하스와 공동통치, 섭정 형태로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몇가지 문제들은 있지만 나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는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 받는다. 이후에 요시야가 가장 후한 평가를 받지만 유다왕 가운데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는 평가는 히스기야가 처음이다.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산당을 헐고 돌기둥들, 아세라 목상, 모세가 만든 구리 뱀 조차도 깨뜨렸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왕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아버지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공동통치기간을 설정한다면, 아하스가 그동안 통치행위로 보여준 내용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아하스는 온갖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일을 했고, 패배한 시리아 신의 제단을 본뜻 것을 성전에 두었고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들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통치를 바로 옆에서 보고 들었다는 이야기가된다. 그리고 그런 다원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신앙, 기복적 선택들에 대해 큰 실망과 회의감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 아하스에 반동하는 힘으로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려는 선택이 더욱 힘을 받았을 것이다.
6 그는 주님에게만 매달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
7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 그와 같이 계시므로, 그는 늘 성공하였다.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8 그는 가사와 그 전 경계선까지, 또 망대로부터 요새화된 성읍에 이르기까지, 블레셋을 모두 쳐부수었다.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려는 선택은 매우 훌륭하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만 매달려 주님만 선택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한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선택과도 완전히 상반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어기고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국가의 타격을 입었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그와 정반대로 모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얻는 결과는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성공하였다’ 라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분명히 앗시리아는 제국으로 성장했고 북이스라엘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를 파괴하고 복속시켰다. 아직 유다가 남아있는 것은 ‘속국’의 형태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후의 랍사게의 발언을 통해서 유다가 이집트와 연합전선을 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국제 질서는 매우 위험했고,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하게 섬기는 신앙은 큰 위험과 도전을 수반하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성공과 앗시리아 왕에게 반기를 드는 방식의 통치행위는 아버지 아하스 시절부터 꾸준히 조심스럽게 계속해서 진행되어온 통치철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9 히스기야 왕 제 사년 곧 이스라엘의 엘라의 아들 호세아 왕 제 칠년에,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10 세 해 만에 그 도성을 함락시켰다. 곧 히스기야 제 육년과,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제 구년에 그들이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것이다.
11 앗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사로잡아 가서, 그들을 할라와 고산 강 가의 하볼과 메대의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다.
12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깨뜨렸으며,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순종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3 히스기야 왕 제 십사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앗시리아의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해서 도성을 함락시킨다. 히스기야 6년, 호세아 구년 이라는 시간이 앞서 지적한 것처럼 문제가 되는데, 우리는 13절에 히스기야 십사년이 단독 통치를 시작한 해라고 설정할 것이고 그 이전에는 아하스와 공동통치, 섭정 형태였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통치철학과 아버지와의 통치철학이 차이가 있었을 것이며, 아버지가 앗시리아에조공을 바치고 성전의 전용통로와 출입구를 없애버린 행위들에 상당한 반대심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전제 하에서 역대기에서 ‘왕이 되던 첫 해 첫째달’에 닫혔던 주님의 성전 문들을 열고 수리했다는 설명도 단독통치를 시작한 시기가 되자마자 앗시리아에 반대하는 명시적인 행위를 한 것이고, 이에따라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이 반역 행위에 대한 처벌로써 온 것이라고 설명해볼 수 있다.
14 그래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와 있는 앗시리아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15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16 그 때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주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주었다.
첫번째 히스기야의 앗시리아에 대한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전 왕들이 했던 방식처럼 성전과 왕궁의 보물창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내준다. 게다가 주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준다. 이것은 ‘임시변통’일 뿐이다. 곧 문제는 심각한 앗시리아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 이야기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이미 암시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율법과 규례를 전혀 지키지 않음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어떤 도움도 얻지 못했었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패하고 실수하는’ 전형적인 유형의 왕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았고, 그 율법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써 결과는 북이스라엘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는게 목적이 아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오염된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실수와 잘못을 반복한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우상숭배자인 아버지 밑에서 그 방향성을 잃지 않았고, 심지어 앗시리아에게 잘못된 선택으로 성전의 금을 바치는 부정적인 행동을 취했지만, 다시 하나님 앞에서 옷을찢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방향으로 끝없이 되돌아오면 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살아갈 힘이 될 것이며 능력이 될 것이다. 오늘 하나님을 온전히 선택하길 다시한번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