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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적의 조롱과 포효에 침묵하기 / 열왕기하 18:17–37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7 그런데도 앗시리아 왕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많은 병력을 주어서,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려보내어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윗 저수지의 수로 곁에 있는 빨래터로 가는 큰 길 가에 포진하였다.
18 그들이 왕을 부르자,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 궁내대신과 셉나 서기관과 아삽의 아들 요아 역사기록관이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히스기야에게 전하여라. 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의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냐?
20 전쟁을 할 전술도 없고, 군사력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지금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역하느냐?
21 그러니 너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 같은 이집트를 의지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고 붙드는 자는 손만 찔리게 될 것이다. 이집트의 바로 왕을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앗시리아는 히스기야의 조공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병력을 주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려보내 히스기야를 치게 만든다. 앗시리아군은 윗저수지의 수로 곁에 있는 빨래터를 장악하는데 이것은 성으로 들어가는 수원지를 차지하고 공급을 막아 성을 말라죽게 만들려는 전통적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제 랍사게는 이스라엘을 향한 도발을 시작한다. 앗시리아의 강대한 힘을 이스라엘이 막아낼 수 없으리라는 점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번째는 이스라엘의 객관적인 전략전술이 앗시리아를 이길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싸우려고 하느냐고 질문하면서 ‘이집트’를 의지하려고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집트를 의지하는 것은 부러진 갈대 지팡이에 오히려 손을 다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어떤 동맹도 무찌를 능력이 있음을 천명한다.
실재로 앗시리아는 그런 강력한 힘과 능력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객관적인 전쟁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랍사게의 조롱은 타당하다.
22 너희는 또 나에게, 주 너희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겠지마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이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산당과 제단들을 모두 헐어 버린 것이, 바로 너 히스기야가 아니냐!’
23 이제 나의 상전이신 앗시리아의 임금님과 겨루어 보아라. 내가 너에게 말 이천 필을 준다고 한들, 네가 그 위에 탈 사람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24 그러니 네가 어찌 내 상전의 부하들 가운데서 하찮은 병사 하나라도 물리칠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도 병거와 기병의 지원을 받으려고 이집트를 의존하느냐?
25 이제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이 곳을 쳐서 멸망시키려고 오면서, 어찌 너희가 섬기는 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왔겠느냐? 너희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 땅을 치러 올라가서, 그 곳을 멸망시키라고, 나에게 친히 이르셨다.”
두번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랍사게의 지적은 히스기야가 아버지 아하스의 다원주의적인 종교방식을 버리고 편협하고 협소한 일신주의 방식의 종교로 회귀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로써 ‘앗시리아’에 대한 존중과 숭배가 사라지고 앗시리아 제국에 대한 복종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랍사게는 ‘상전인 앗시리아 임금님’과 겨루어 보라고 말한다. 그 어떤 것도 의지하려는 모든 것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군사력이든, 이집트의 힘이든, 신적인 힘이든 어떤 것이라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랍사게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너희가 섬기는 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왔겠느냐고 주장한다. 그는 주님의 이름을 참칭하며 땅을 치러 올라가서 멸망시키라고 ‘친히’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물론 랍사게는 유일하신 하나님께 질문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지고있는 다원주의적 신앙은 어떤 다른신이라도 섬길 수 있고 어떤 다른신의 응답도 하나님의 응답으로 여길 수 있다. 그는 교묘하게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다. 조잡하고 거짓된 신들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있는 것이다.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말하였다. “성벽 위에서 백성들이 듣고 있으니, 우리에게 유다 말로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 종들에게 시리아 말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시리아 말을 알아듣습니다.”
27 그러나 랍사게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상전께서, 나를 보내셔서, 이 말을 하게 하신 것은, 다만 너희의 상전과 너희만 들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너희와 함께, 자기가 눈 대변을 먹고 자기가 본 소변을 마실, 성벽 위에 앉아 있는 저 백성에게도 이 말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28 랍사게가 일어나서 유다 말로 크게 외쳤다. “너희는 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의 임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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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김과 셉나, 요아는 유다의 사절로써 랍사게에게 시리아 말로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시리아 말, 아람어는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국제질서에 맞춰서 협의를 하길 원한다는 제스쳐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경멸적 언어들에 대한 반응보다 언어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발언에 대해 ‘공식화’ 시키길 원한다. 그러나 랍사게는 철저히 무시해버린다. 이 발언과 선언은 단지 왕과 왕 사이의 공식입장을 만들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됐고, ‘파괴’만 남았다. 랍사게는 그 절망적 파괴가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를 예고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유다 말로 크게 외쳐서 말한다.’
그가 유창한 유대말을 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통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앗시리아에 항복한, 또는 배신한 북이스라엘의 사람의 입, 동포와 동족에게서 전달된 말일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그 말의 파괴력은 더욱 강력했을 것이다.
29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아라. 그는 너희를 내 손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
30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여서, 너희의 주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며,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 절대로 넘겨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너희로 주님을 의지하게 하려 하여도, 너희는 그 말을 믿지 말아라
31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아라.’ 앗시리아의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와 평화조약을 맺고, 나에게로 나아오너라. 그리하면 너희는 각각 자기의 포도나무와 자기의 무화과나무에서 난 열매를 따 먹게 될 것이며, 각기 자기가 판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32 내가 다시 와서 너희의 땅과 같은 땅, 곧 곡식과 새 포도주가 나는 땅, 빵과 포도원이 있는 땅, 올리브 기름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서, 거기에서 살게 하고, 죽이지 않겠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주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너희를 설득하여도,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아라.
33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어느 신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은 어디에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은 또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져 내었느냐?
35 여러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그 어느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기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낸다는 말이냐?’ ”
랍사게는 앗시리아 왕의 말을 대언한다. 절대로 히스기야 말을 듣지 말고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앗시리아 임금의 말을 들으라’고 말한다. 그가 약속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앗시리아 임금의 통치 아래 평화조약을 맺고,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열매를 얻고 각자 자기의 샘을 얻어 마시게 될 것이다.
곡식과 새 포도주가 나는 땅, 빵과 포도원이 있는 땅, 올리브 기름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서 살게하고 죽이지 않겠다.’
이것은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의 모형과 유사한 땅이다.
다시말해 지금 앗시리아 왕은 ‘하나님’을 참칭하며, 신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대안으로 자기를 소개한다.
이 전쟁은 더이상 ‘왕’들의 전쟁이 아니다. ‘신적인 대결’이다.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앗시리아의 신적 존재를 이길 수 있겠느냐고 질문한다.
36 백성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37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 궁내대신과 셉나 서기관과 아삽의 아들 요아 역사기록관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옷을 찢으며 히스기야에게 돌아와서, 랍사게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백성은 왕의 명령에 따라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옷을 찢고 왕에게 돌아와 랍사게의 말을 전할 뿐이다.
조롱과 포효에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무기력감은 유다를 깊은 절망으로 끌어내렸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계시는가? 이 조롱과 수치를 어떻게 갚으시려는가?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재판정에서 경멸과 수치스러운 때림과 비난과 침뱉음을 당하시면서도 침묵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호소하셨다. 적의 맹렬한 비난과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한의 무기력을 경험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아무런 힘이 없으셨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일소할 수 있는 천군천사를 데려오실수 있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능력의 발현을 오로지 ‘주님의 손’에 맡겨드렸다.
랍사게의 발언은 치명적이다. 이스라엘의 무능력함을 현실적으로 폭로하고 신적으로 조롱했다. 이스라엘은 답변할 힘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선택에 따라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오로지 자신들이 해야 할 바를 선택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만 엎드릴 뿐이다. 기도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힘과 능력이다. 가장 좌절스럽고 절망스러운 환경에 놓여있을 때조차 ‘기도’는 유일한 방법이며 무한한 능력이고 영원한 소망을 제공한다.
지금 우리의 삶에 놓여진 숙제들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진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기를 선택하자.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주님의 손’에서 일어난다. 그 능력을 의지하며 엎드리기를 선택하며 결단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