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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치명적인 실수지만 기도했기 때문에 / 열왕기하 20:1–1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게 되었으니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
2 이 말을 듣고서, 히스기야는 그의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여
3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죽게 되었으니 모든 일을 정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 무렵’이라는 표현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앗시리아 침공’의 무렵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14년의 통치] 후, 그러니까 아버지 아하스와 공동통치 시기가 마친 때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하나님께서 15년을 더 살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서 15년의 시간은 히스기야의 단독 통치 기간을 허락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집안의 모든 일을 정리하라’는 명령은 다음 후계자에게 또 다시 공동통치를 하도록 만들라는 명령일 것이다. 히스기야의 아들은 유다의 가장 악한 왕으로 알려져있는 ‘므낫세’ 이다.
오늘 본문과 다음 본문에서 바벨론에 성전 창고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할수밖에 없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왕이었지만 ‘결말’이 긍정적이지 않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며 통곡하며 흐느껴 운다. 우리는 14년동안 아버지인 아하스의 배교적인 정책에 맞서서 하나님만 섬기기로 작정하며 미리부터 앗시리아와 선을 긋는 정책들을 펼쳐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생명의 연한을 그친다고 하시니, 그 일들에 대한 보람과 의미가 퇴색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을 보아달라고 간청한다. 이것은 자신을 제2의 다윗이라고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 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기억하시듯, 히스기야를 기억하실 것이다.
4 이사야가 궁전 안뜰을 막 벗어나려 할 때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되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인 히스기야에게 전하여라. ‘네 조상 다윗을 돌본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를 고쳐 주겠다. 사흘 뒤에는 네가 주의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6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서,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
7 그리고 이사야가 왕의 신하들에게, 무화과 반죽을 가져 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그것을 가져 와서 왕의 상처 위에 붙이니, 왕의 병이 나았다.
이사야는 궁전 안뜰을 막 벗어나려고 할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다시말해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선언을 듣자마자 기도했다는 것이고 그 기도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돌보신 것처럼 ‘히스기야’를 돌보실 것이다. 하나님의 고쳐주심의 목적에는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주시고 보호하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지적한 것처럼 이 병에 걸린 히스기야는 ‘앗시리아 침공’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만약 히스기야의 기도가 없었다면 북이스라엘과 함께 유다는 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치유는 단지 히스기야 ‘개인’의 치유로 국한되지 않는다. [다윗]의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왕가의 보호와 도성의 보호로 이뤄진다. 자신을 제2의 다윗으로 소개하며 자신의 신실함을 보아달라는 히스기야를 ‘보고 들으신다’
무화과 반죽의 효능은 다른 고대 문헌에서도 종종 등장하지만 본문의 목적과는 다르다.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이 히스기야를 고치신 것이다. 이것은 앗시리아가 물러간 방식과 동일하다.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고치셔서, 사흘 뒤에는 내가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9 이사야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실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 그림자를 십 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지,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10 히스기야가 대답하였다. “해 그림자를 십 도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해주십시오.”
11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께 기도를 드린 뒤에, 아하스의 해시계 위로 드리운 그 그림자를 뒤로 십 도 물러나게 하였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주님께서 고치셔서 낫게 하신다는데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여기에서 해 그림자는 ‘계단’의 층계에 놓여져 있었을 것이고 그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지든지 짧아지든지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주 천체를 움직이는 놀랍고 기이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며 하나님의 자연 만물에 대한 통치자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여기는 것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기적에 대한 요청이 히스기야의 [믿음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음으로 고침받는데서 그치지 않고 증거를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게 그 증거를 보여주시지만, 이것을 무작정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죽는다’ 라고 하셨을 때 곧바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것처럼 ‘낫겠다’ 하실 때 곧바로 기쁨과 감사로 예배드리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전 본문이 앗시리아 군에 대항한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여줬다면, 오늘 본문과 내일 본문은 하나님의 응답과 말씀하심에 ‘의심’하거나 ‘순응해버리’는 신앙의 나이브함을 보여준다. 분명히 히스기야는 명암이 존재한다. 그는 완벽한 왕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이 완벽한 왕이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입었던 것처럼 히스기야도 완벽한 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을 입었다. 기억할 것은 그가 곧바로 하나님앞에 엎드리는 그 자세를 하나님께서 ‘즉각’ 응답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즉각 엎드릴 때, 하나님의 즉시 응답하심을 경험할 줄 믿는다. 오늘 즉각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즉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