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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취소된 심판이 아닌 유예된 심판 / 열왕기하 20:12–2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빌로니아의 므로닥발라단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서와 예물을 히스기야에게 보내 왔다.
13 히스기야는 그들을 반가이 맞아들이고, 보물 창고에 있는 은과 금과 향료와 향유와 무기고와 창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보여 주었다.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궁궐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보여 주었다.
14 그 때에 이사야 예언자가 히스기야에게 와서 물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히스기야가 대답하였다. “그들은 먼 나라 바빌로니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15 이사야가 또 물었다. “그들이 임금님의 궁궐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히스기야가 대답하였다. “그들은 나의 궁궐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았고, 나의 창고 안에 있는 것도, 그들이 못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므로닥발라단 왕은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서와 예물을 보내온다. ㅇ우리가 이전 본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앗시리아의 강력한 힘이 전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었고, 자신의 목숨과 유다의 운명이 함께 갈 것처럼 여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앗시리아와 다른 방향에 있었던 바빌로니아가 유다에게 힘을 보태줄 것처럼 보이니 히스기야는 동맹까지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보물창고에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국력을 소상히 공유함으로써 유다가 보호받을만한 나라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앗시리아가 바빌로니아와의 소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히스기야가 이집트와도 손잡으려고 했던 정황이 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대외적인 동맹관계 구축이 여러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지적해오고 있는 것처럼 참되게 의지해야 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계속해서 힘을 도우려고 하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에 눈을 돌리는 것은 유다의 왕, 다윗의 후계를 자처하는 이로써 해서는 안될 일이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참되게 의지해야 하는 분을 잠시 잊고 있다.
이사야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판결은 내려졌다. 역대기에 따르면 하나님이 그의 인품을 시험하시려고 히스기야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셨다고 말한다. 심판은 유예되었지만, 취소되지는 않았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17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이 오면, 네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오늘까지 네 조상이 저장하여 놓은 모든 보물이, 남김없이 바빌론으로 옮겨 갈 것이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18 ‘너에게서 태어날 아들 가운데서 더러는 포로로 끌려가서, 바빌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 ”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께서 전하여 준 주님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사야는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날’은 심판과 재앙의 날이다. 즉, 유다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가 자랑했던 모든 것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포로로 끌려가는 일은 미리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전 장면에서 히스기야 개인의 죽음 앞에서 그가 곧바로 벽을 보고 엎드려 기도했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즉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로 한정되자 그는 즉시 기도하지 않는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히스기야의 이런 태도는 지금 당장의 앗시리아의 공격이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 공격을 막아서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급선무의 과제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직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전 장면에서 그가 하나님께 ‘표적’을 구한것도 마찬가지였다. 역대기는 히스기야가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길 줄 알고 그 명령에 준행하려고 노력한 왕이지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교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지 못하는 태도가 결국 유다를 결정적인 심판에서 되돌이키게 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20 히스기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누린 모든 권력과, 어떻게 그가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를 만들어서 도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였는지는 ‘유다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과 함께 누워 잠드니, 그의 아들 므낫세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히스기야가 기혼 샘 물줄기를 막고 땅 속에 굴을 뚫어서 다윗성에 끌어들인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 기적과 같은 사건때문에 앗시리아의 포위 속에서도 예루살렘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기적적 사건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이다. 그는 한계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함으로써 은혜 속에 살아간 사람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우리 주님 뿐이다. 그 전적인 헌신과 사랑의 대상에서 초점이 흐려져 다른 대상을 바라볼 때 ‘심판과 멸망의 날’은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려는 존재들을 파괴시키실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 의지하려는 수많은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원주의화된 사회속에서 ‘나를 의지하라’고 외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는 독단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의 관계를 무너뜨린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만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 주님의 다스리심 속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모든 ‘의지할 것들’은 사라질 힘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힘’이시다. 오늘 주님만 의지하길 다시한번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