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시야는 왕이 되었을 때에 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서른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여디다는 보스갓 출신 아다야의 딸이다.
2 요시야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이 당한 반역 이후에 왕이 되었다. 정국이 시끄럽고 어지러울 때 어린 요시야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매우 불안한 시작을 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영웅적인 왕의 일대기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고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 원문으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이고 정도로만 걸었다고 의역할 수 있겠다. 요시야는 열왕기 기자에 의해서 가장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위대했던 왕을 추억하게 만들면서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요시야를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3 요시야 왕 제 십팔년에 왕은, 아샬랴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인 사반 서기관을, 주님의 성전으로 보내며 지시하였다.
4 “힐기야 대제사장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주님의 성전에 바친 헌금, 곧 성전 문지기들이 백성으로부터 모은 돈을 모두 계산하도록 하고,
5 그 돈을 주님의 성전 공사 감독관들에게 맡겨, 일하는 인부들에게 품삯으로 주어 주님의 성전에 파손된 곳을 수리하게 하시오.
6 목수와 돌 쌓는 사람과 미장이에게 품삯을 주고, 또 성전 수리에 필요한 목재와 석재도 구입하게 하시오.
7 그들은 모두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니, 일단 돈을 넘겨 준 다음에는 그 돈을 계산하지 않도록 하시오.”
어린 시절의 등극과정과 성전의 수리에 대한 헌금 사용들을 살펴보면 여호야다 제사장에 의해 왕위에 올랐던 요아스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의 내용은 열왕기하 12장의 내용과 분명히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인다.
요아스도 이전의 아합 가문의 딸인 아달랴의 폭정과 우상숭배로 성전이 말할 수 없게 훼손되었다. 요시야 이전에도 므낫세와 아몬을 거쳐오면서 ‘아합 가문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따라서 두 상황은 성전의 회복과 복구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일일 뿐더러,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왕권이 회복되는 일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8 힐기야 대제사장이 사반 서기관에게,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그 책을 사반에게 넘겨 주었으므로, 사반이 그 책을 읽어 보았다.
9 사반 서기관은 그 책을 읽어 본 다음에, 왕에게 가서 “임금님의 신하들이 성전에 모아 둔 돈을 쏟아 내어, 작업 감독관, 곧 주님의 성전 수리를 맡은 감독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10 사반 서기관은 왕에게, 힐기야 대제사장이 자기에게 책 한 권을 건네 주었다고 보고한 다음에, 그 책을 왕 앞에서 큰소리로 읽었다.
그러나 앞선 요아스와의 차이점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어떻게, 왜 그곳에 있었는지, 성전을 수리하면서 발견된 것이 그토록 놀라움을 가져다줄만큼 대단한 것이었는지 우리가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다.
이 책의 발견 이야기는 현대의 학자들에게 매우 큰 논란을 만들어냈다. 일명 ‘신명기문서’라고 불리는 것으로 모세 오경이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본문을 인용하곤한다.
성경이 후대에 임의적으로 편집되었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 문서가 분명히 당시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었던 성경 또는 문서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고 오염되었는지 확인시켜주었을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아합의 가문과 관련되었던 요아스 이전의 왕들, 그리고 므낫세-아몬 통치의 긴 시간과 일시적인 포로 생활을 생각해볼 때 그렇다. 그때에 이미 성경의 부분적인 파괴와 오염이 있었으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11 왕이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의 옷을 찢었다.
12 왕은 힐기야 대제사장과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사반 서기관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였다.
13 “그대들은 주님께로 나아가서, 나를 대신하여, 그리고 이 백성과 온 유다를 대신하여, 이번에 발견된 이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하여 주님의 뜻을 여쭈어 보도록 하시오. 우리의 조상이 이 책의 말씀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이 지키도록 규정된 이 기록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진노가 크오.”
이전의 요아스의 개혁과 요시야의 개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요아스가 여호야다라는 인물의 영향력 아래서 개혁을 진행했었다면 요시야의 개혁은 전적으로 요시야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곧바로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해하며 옷을 찢느다. 그리고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음으로 내려진 주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한다.
우리가 이전 히스기야 이야기 시점부터 이미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살펴봤고, 차례로 왕들의 회개와 뉘우침으로 심판이 유예되어오고 있다는 점을 나눴다. 이제 요시야를 통해서 다시 이스라엘의 심판은 또 다시 유예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왕을 하나님은 기꺼이 긍휼히 여겨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요시야’ 때에 한정될 것이다.
14 그리하여 힐기야 제사장과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살룸의 아내 훌다 예언자에게 갔다. 살룸은 할하스의 손자요 디과의 아들로서, 궁중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훌다는 예루살렘의 제 이 구역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에게 가서 왕의 말을 전하였다.
15 그러자 훌다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들을 나에게 보낸 그에게 가서 전하시오.
16 ‘나 주가 말한다. 유다 왕이 읽은 책에 있는 모든 말대로, 내가 이 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17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그들이 한 모든 일이 나의 분노를 격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분노를 이 곳에 쏟을 것이니,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왕의 시종은 훌다 예언자에게 간다. 훌다는 살룸의 아내다. 왜 특별히 여성인 훌다에게 가야했을까? 우리는 성경에서 여성 리더들을 만나게 된다. 미리암, 드보라, 오늘 본문의 훌다가 그렇다. 여성사역자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니다. 여기에서 어떤 부정성도 보이지 않는다. 당대 사람들에 의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된 존재라는 말은 그만큼 인정받는 업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훌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은 두가지로 나눠서 응답하실 것이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다. 이스라엘백성에게 책의 기록대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왕들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들의 일상화되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옷을찢고 회개하는 왕에게는 다른 약속을 주신다.
18 주님의 뜻을 주님께 여쭈어 보라고 그대들을 나에게로 보낸 유다 왕에게 또 이 말도 전하시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들은 말을 설명하겠다.
19 이 곳이 황폐해지고 이 곳의 주민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나의 말을 들었을 때에, 너는 깊이 뉘우치고, 나 주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옷을 찢고, 내 앞에서 통곡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네 기도를 들어 준다. 나 주가 말한다.
20 그러므로 내가 이 곳에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 내가 너를 네 조상에게로 보낼 때에는, 네가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겠다.’ ” 그들이 돌아와서, 이 말을 왕에게 전하였다.
요시야에게는 다른 응답을 주신다. 요시야는 심판의 응답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님께 바짝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은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을 찾는 요시야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물론 요시야 대에 한정된 응답이지만 이스라엘은 다시금 잠깐 동안의 심판이 유예받는다.
여기에서 요시야가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지’ 못했고 전사했다는 점을 생각해볼수도 있다. 여기에서 ‘조상에게 보낼 때’와 ‘평안함’이 결합되어 전쟁중에 전사했다는 사실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그가 죽음을 끔찍한 전사를 경험했더라도 그가 ‘무덤에 들어가는 일’은 아무런 방해없이 평안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모순은 해결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심판은 ‘끝’난게 아니다. 이미 확정된 것이 잠시 유예되었을 뿐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 곧바로 회개하는 것만이 이스라엘 왕들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는 점을 계속 발견한다.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되심을 주장하신다. 왜곡되고 오염된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참된 말씀을 발견하게 하시고 지적하시고 고치길 원하신다. 우리 삶에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르고 정확한 말씀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뤄질줄로 믿고 받응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