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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되기 때문에 / 열왕기하 23:1–2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소집하였다.
2 왕이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그와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 때에 왕은, 주님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크게 읽어서 사람들에게 들려 주도록 하였다.
3 왕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를 것과, 온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님 앞에서 세웠다. 온 백성도 그 언약에 동참하였다.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드을 소집한다. 그리고 성전으로 올라가 모든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성전’으로 모이게 만든다. 그리고 발견된 책의 이야기를 크게 읽어 선언한다.
성전의 ‘기둥’이라하면, 야긴과 보아스 일 것이다. 지성소로 들어갈 문 앞에서 주님을 따를 것, 마음과 목숨을 다바쳐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과 말슴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세운다.
여기에서 모든 장로들, 모든 백성, 모든 주민 등 어른에서 아이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짐없는 회집을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시야의 개혁은 ‘일부’의 개혁이 아니다. 국가 전체에 대한 개혁의 선언이었고, 민족의 변혁을 위한 강력한 주문이었다.
4 왕은 힐기야 대제사장과 부제사장들과 문지기들에게,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려고 하여 만든 기구들을, 주님의 성전으로부터 밖으로 내놓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들판에서 그것들을 모두 불태우고, 그 태운 재를 베델로 옮겼다.
5 그는 또, 유다의 역대 왕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위에 있는 산당에서 분향하려고 임명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바알과 태양과 달과 성좌들과 하늘의 별에게 제사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몰아냈다.
6 그는 아세라 목상을 주님의 성전에서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들어 내다가, 그 곳에서 불태워 가루로 만들어서, 그 가루를 일반 백성의 공동묘지 위에 뿌렸다.
7 왕은 또 주님의 성전에 있던 남창의 집을 깨끗이 없애었다. 이 집은 여인들이 아세라 숭배에 쓰이는 천을 짜는 집이었다.
개혁은 ‘성전’에서 시작해서 유다 밖으로 뻗어나간다. 이전 본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요아스의 개혁도 성전에서 왕궁으로, 국가로 뻗어나갔던 것을 살펴봤었다. 요시야는 [성전] 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려던 기구들을 성전 밖으로 내놓도록 만든다. 그리고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에서 불태우고, ‘베델’로 옮겼다.
예루살렘 주위에 있는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내쫓고, 기타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을 몰아낸다. 이렇게 성전을 중심으로한 개혁이 점점 그 영역과 내용들을 확장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
왕은 성전에 있던 ‘남창의 집’도 깨끗이 없앤다. 신전 창기의 존재가 성전에 있었다는 것도 충격적이고 놀라운데 이교적 행위, 그것도 문란한 방식으로 예배하는 행위가 ‘성전’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것을 묵인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범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8 그는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든 제사장을 철수시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게바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그 제사장들이 제사하던 산당들을 모두 부정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성읍 성주의 이름을 따서 ‘여호수아의 문’ 이라고 부르는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의 어귀에 있는 산당들 곧 그 성문 왼쪽에 있는 산당들을 모두 헐어 버렸다.
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였으나,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하였다.
10 그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 에 있는 도벳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어떤 사람도 거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11 또 그는, 유다의 왕들이 주님의 성전 어귀, 곧 나단멜렉 내시의 집 옆에 있는, 태양신을 섬기려고 하여 만든 말의 동상을 헐어 버리고, 태양수레도 불태워 버렸다.
이제 정화 작업은 유다의 모든 성읍, 게바에서 브엘세바로 확장된다. 이곳의 모든 제사장을 철수시키고 그곳에서 제사하던 산당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제사하던 제사장들의 제사장으로써의 ‘직책’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장소를 부정화 시킴으로써 오로지 예배드리는 곳은 ‘성전’으로만 제한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가지의 왕들은 이런 정도의 대대적인 ‘산당제거’ 작업을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성전’ 집중형의 예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낟.
또 ‘신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가증스럽고 끔찍한 예배를 금지시키고 태양신을 섬기려고 만든 말의 동상을 헐어버린다.
12 또 그는, 유다 왕들이 만든 아하스의 다락방 옥상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주님의 성전 안팎 뜰에 세운 제단들을 모두 제거해서 부순 뒤에, 가루로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뿌렸다.
13 또 그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들의 우상인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들의 우상인 그모스와 암몬 사람들의 혐오스러운 밀곰을 섬기려고, 예루살렘 정면 ‘멸망의 산’ 오른쪽에 지었던 산당들도 모두 허물었다.
14 그리고 석상들은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들은 토막토막 자르고, 그 곳을 죽은 사람의 뼈로 가득 채웠다.
요시야는 ‘유다 왕들이 만든’, 즉,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벌인다. 이 모든 정화작업들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신의 조상들이 죄를 회개하고 뉘우침으로 ‘미래’를 탄탄히 세우고자 하는 작업이다. 조상들의 죄는 ‘솔로몬’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스라엘 분열의 뿌리가 된 시원적 우상숭배까지 개혁의 방향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5 왕은 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베델에다 만든 제단 곧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그 제단과 산당도 헐었다. 그는 산당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었고, 아세라 목상도 불태웠다.
16 요시야는 또 산 위에 무덤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그 무덤 속의 뼈들을 꺼내어서, 제단 위에 모아 놓고 불태웠다. 그렇게 하여 그 제단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때 하나님의 사람이 이 일을 두고 예언한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17 요시야가 물었다. “저기 보이는 저 비석은 무엇이냐?” 그 성읍의 백성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유다에서 온 어느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입니다. 그는 베델의 제단에 관하여 임금님께서 이런 일들을 하실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였던 분입니다.”
18 왕이 말하였다. “그 무덤은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아무도 그의 유해를 만지지 못하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예언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다.
19 이스라엘 왕들이 사마리아 도성의 언덕마다 세워 주님의 분노를 돋우었던 모든 산당을, 요시야가 이렇게 헐었다. 그는 베델에서 한 것처럼 하였다.
20 더욱이 그는 그 곳 산당에 있는 제사장들을 모두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뼈를 함께 그 위에서 태운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열왕기상 13장에 여로보암이 만든 베델의 제단에 대한 자세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은 유다에서부터 왔고, 제단을 ‘요시야’ 라는 다윗의 자손이 와서 파괴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먹지 말고 유다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한 늙은 선지자의 꼬임에 먹고 쉬었다가 사자에 잡혀 죽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무덤이 생겼다. 오늘 요시야는 그 제단을 없앤 뒤에 무덤을 발견하고 그 무덤을 내버려두게 만든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오래전 선지자에게 경고하신대로 ‘유대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예언’이 완성되낟.
이로써, 이 모든 파괴적 행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의 성취라는 큰 목적 아래서 행해지고 있음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마리아 도성의 모든 우상숭배의 상징들은 사라진다.
개혁은 모든 백성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까지 뻗어나가며, 모든 장소와 시간을 돌파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총체적’ 개혁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잡음과 피흘림과 파괴적인 행위들이 동반되어야 했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그만큼 개혁과 회개는 큰 아픔과 괴로움을 가져야만 한다. 또한 시대의 인물들이 가졌던 한계를 넘어서 조상들의 죄까지도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의 회개와 참된 돌이킴의 자세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그치는 것은 요시야의 개혁을 비추어 보았을때 ‘온전하지 않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고, 성전을 향해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는 개혁은 그야말로 ‘약속의 아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사건이다.
요시야는 ‘부정한 것들을 부정하게 만듦’으로 거룩을 회복시킨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이라는 가장 부정한 것을 부정하게 만드심으로써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계획을 실행하셨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책임져주심’이었다.
오늘 우리의 회개에 어떤 책임이 필요한가 묵상해보자.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님 앞에 온전한 회개로 나아가 참된 회복을 경험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