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여호아하스는 왕이 되었을 때에 스물세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하무달은 립나 출신인 예레미야의 딸이다.
32 여호아하스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3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이 그를 하맛 땅에 있는 리블라에서 사로잡아,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유다가 이집트에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다.
34 또 바로 느고 왕은 요시야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였다.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끌려가, 그 곳에서 죽었다.
35 여호야김은 바로의 요구대로 그에게 은과 금을 주었다. 그는 바로의 명령대로 은을 주려고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백성들은 각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배정된 액수대로, 바로 느고에게 줄 은과 금을 내놓아야 하였다.
여호아하스는 ‘기름부음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아버지의 충성을 본받지 않고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지른다. 삼개월의 시간이 그가 얼마나 ‘악한 일을 저질렀는가’를 증명해주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미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를 작정하셨다는 점과 그 실행에서 그의 23년의 인생과 삶이 이미 판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적인 상태와 상관없이 그가 짧은 통치를 행할 수 없었던 것은 국제정치역학때문이었다. 아버지 요시야의 반이집트 성향을 따라갔을 여호아하스는 앗시리아와 이집트의 연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를 반길 사람은 없다. 따라서 바로 느고는 곧바로 유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유다를 침략한다. 이것은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바벨론의 진격을 막아설 저지선과 같은 역할이었다. 실재로 리블라는 앗시리아의 군사 행정 역할을 하는 도시가 된다.
느고는 요시야를 대신해서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꾼 뒤 여호아하스를 이집트에서 죽게 만든다. 이로써 이집트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뿌리박히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계속 지적해오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 국제 정세의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만이 왕이 되셔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이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국가들의 싸움과 전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국력을 잃고 시들어 멸망해간다.
36 여호야김은 왕이 되었을 때에 스물다섯 살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스비다는 루마 출신 브다야의 딸이다.
37 그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1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해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왔다. 여호야김은 그의 신하가 되어 세 해 동안 그를 섬겼으나, 세 해가 지나자, 돌아서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하였다.
2 주님께서는 바빌로니아 군대와 시리아 군대와 모압 군대와 암몬 자손의 군대를 보내셔서, 여호야김과 싸우게 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신 것은, 자기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하신 말씀대로,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려는 것이었다.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해에 국제 질서는 급변한다. 이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온다. 앗시리아-이집트의 영향력 아래서 왕이된 여호야김으로써는 이집트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빌로니아가 쳐들어온 시기에는 ‘그의 신하’가 되지만, 결국 이집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시기, 바빌로니아가 갈가미쉬 전투에서 앗시리아를 이긴 후에는 힘의 추는 완전히 바빌로니아로 넘어가게 되어버린다. 역사적 상황으로써도 이집트를 선택한 것은 뼈아픈 실책일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이 사건을 평가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일이라고 정리한다. 하나님은 심판을 이미 경고하셨고 일상화되어버린 악으로 가득한 유다를 그냥 내버려두실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 앞에서 유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 끔찍한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전에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시리아, 암몬, 모압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으로써 우리가 열왕기하 전반부에서 물리쳤던 민족들의 재침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떠나심으로써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잇을 것이다.
3 이것은, 므낫세가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주님 앞에서 내쫓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유다에게서 성취된 일이었다.
4 더욱이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예루살렘을 죄 없는 사람의 피로 가득 채운 그의 죄를, 주님께서는 결코 용서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5 여호야김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과 함께 누워 잠드니,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7 바빌로니아 왕이 이집트의 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집트 왕에게 속한 땅을 모두 점령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은 다시는 더 국경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열왕기 기자의 계속된 평가는 므낫세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흘렀고, 용서하시기 힘든 죄악들이 유다에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이스라엘의 악을 ‘바벨론’이라는 더 큰 악으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이스라엘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악의 조장자’가 되시는가? 그러나 이것은 다른 면에서 하나님께서 [악 조차도 관리하고 게신다]는 것으로 이해되게 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심판을 유예시키셨지만, 그 책임과 의무까지 저버리신 것은 아니다. 억욱하고 죄없는 사람들의 호소와 울부짖음을 반드시 갚아주신다.
시대는 강력한 왕들의 전쟁으로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관리’ 아래서 일어나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바에 따라서 그 모든 악들은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이집트가, 앗시리아가, 바빌로니아가 강해보여도, 결국 그 모든 강력한 악들을 무너뜨리고 사라지게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시간’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시며 그들의 영화로움을 빛바라게 만드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짧은 인생을 살 뿐인 유한한 인간으로써 어떤 교만함을 가질 수 없다. 그 앞에 바짝 엎드리며 순복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하고 안전한 가능성이다. 오늘도 그 악을 여전히 기억하고 관리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 순복하기를 결단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