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 제 십구년 다섯째 달 칠일에, 바빌로니아 왕의 부하인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9 그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 곧 큰 건물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 근위대장이 지휘하는 바빌로니아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헐어 버렸다.
11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은 도성 안에 남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투항한 사람들과 나머지 수많은 백성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
12 그러나 근위대장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이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과 모든 건물은 모두 불태워버린다. 투항한 사람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포로가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이제 노예로 살았던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 출애굽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었다면, 그들의 ‘역출애굽은 그들의 정체성이 파괴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중의 일부, 가장 가난한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남겨두고 가게 된다. 물론 바빌로니아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인 국가가 반역하지 않도록 국가 역량을 가진 인력을 빼버리는 것은 전략적 접근이다. 그러나 아예 그 지역 사람들을 없애버리면 관리가 불가능해진다. 바빌로니아는 가난한 백성들을 남겨두고서 포도원을 가꾸고 포도주를 수탈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전략적인 접근이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이들은 ‘그루터기’가 되어서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가져올 것이다.
13 바빌로니아 군대는 주님의 성전에 있는 놋쇠 기둥과 받침대, 또 주님의 성전에 있는 놋바다를 부수어서, 놋쇠를 바빌론으로 가져 갔다.
14 또 솥과 부삽과 부집게와 향접시와 제사를 드릴 때에 쓰는 놋쇠 기구를 모두 가져 갔다.
15 근위대장은 또 화로와 잔도 가져 갔다.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하여 가져 갔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고 하여 가져 갔다.
16 솔로몬이 주님의 성전에 만들어 놓은, 놋쇠로 만든 두 기둥과, 놋바다 하나와 놋받침대를 모두 가져 갔다. 그가 가져 간 이 모든 기구의 놋쇠는, 그 무게를 달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17 기둥 한 개의 높이는 열여덟 자이고, 그 위에는 놋쇠로 된 기둥 머리가 있고, 그 기둥 머리의 높이는 석 자이다. 그리고 놋쇠로 된 기둥 머리 위에는 그물과 석류 모양의 장식이 얹혀 있는데, 다 놋이었다. 다른 기둥도 똑같이 그물로 장식되어 있었다.
첫번째 포로때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탈취하고 부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약탈하고 파괴시키려고한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같다. 성전은 계속해서 개혁의 대상이었고, 개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성전의 물건과 역사성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전이 무너지는 순간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파괴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도 떠나가시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언하셨고, 경고하셨던 일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성전’에 제한되거나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전의 존립과 파괴에 따라 일하시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에 미쳐있다. 따라서 성전은 이스라엘 경건의 ‘표식’일 뿐이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최종적 형태는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너진 성전과 다른 새로운 성전을 세우실 것이다.
18 근위대장은 스라야 대제사장과 스바냐 부제사장과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체포하였다.
19 이 밖에도 그가 도성 안에서 체포한 사람은, 군대를 통솔하는 내시 한 사람과, 도성 안에 그대로 남은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그 땅의 백성을 군인으로 징집하는 권한을 가진 군대 참모장과, 도성 안에 남은 그 땅의 백성 예순 명이다.
20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은 그들을 체포하여, 리블라에 머물고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데리고 갔다.
21 바빌로니아 왕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처형하였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다.
느부갓네살은 성전에 근무하는 대제사장과 문지기들, 군대의 통솔자들, 왕의 시종들, 군대 참모장 등 60명을 끌고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을 모두 처형하게 된다. 우리는 1차 포로때 국가적 역량을 가진 핵심인물들을 바빌로니아로 끌고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이제 두번째에는 남아있는 국가적 기능자체가 무력하게 되버림을 보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에는 ‘소망’이 사라졌다.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서 땅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약속의 땅의 주민이 될 자격을 잃었다. 그것은 오로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벌어진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22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가 유다 땅에 조금 남겨 놓은 백성을 다스릴 총독으로,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를 임명하였다.
23 군대의 모든 지휘관과 부하들은, 바빌로니아 왕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하여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냐와 그의 부하들이 모두 미스바에 있는 그달리야 총독에게로 모여들었다.
24 그 때에 그달리야는 그들과 그 부하들에게 맹세를 하면서, 이렇게 당부하였다. “바빌로니아 관리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 땅에 살면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로울 것이오.”
25 그러나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에, 엘리사마의 손자이며 느다니야의 아들로서 왕족인 이스마엘이 부하 열 사람을 데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죽였다.
26 그런 다음에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과 군대 지휘관이 다 일어나 이집트로 내려갔다.
느부갓네살은 그달리야를 유다의 총독으로 삼는다. 그달리야는 친바벨론계 인사로써 요시야 개혁에 참여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달리야는 온화하고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성품을 바벨론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달리야는 바빌로니아 관리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라고 하면서 이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것임을 인정하라는 예레미야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을 보게된다. 하지만,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을 신임하고 믿어주었음에도 결국 이스마엘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미 경고되었음에도 그달리야의 온화한 성품이 오히려 그를 비참한 죽음에 이르르게 만들었다. 이스마엘은 암몬에게로 넘어가 세력을 규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이집트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때 벌어진 일로 인해 예레미야도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예레미야 41장에서부터 나오게 된다.
이들이 이집트로 돌아간 것은 ‘역출애굽’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반역’이라고 보셨다. 그들은 바벨론의 심판을 받아 겸비하고 회개해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살길을 찾아 가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집트로 돌아간다. 그들의 선택은 결코 하나님의 명령과 상관없는 선택이었다. 하나님은 그 이집트조차 바빌로니아에 의해 때리게 만드실 것이다.
27 유다의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간 지 서른일곱 해가 되는 해 곧 바빌로니아의 에윌므로닥 왕이 왕위에 오른 그 해 열두째 달 이십칠일에, 에윌므로닥 왕은 유다의 왕 여호야긴 왕에게 특사를 베풀어, 그를 옥에서 석방하였다.
28 그는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접하여 주면서, 그와 함께 있는 바빌로니아의 다른 왕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를 여호야긴에게 주었다.
29 그래서 여호야긴은 죄수복을 벗고, 남은 생애 동안 늘 왕과 한 상에서 먹었다.
30 왕은 그에게 평생 동안 계속해서 매일 일정하게 생계비를 대주었다.
여호야긴은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다스리고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다. 그러나 27절은 여호야긴이 여전히 ‘왕’으로 소개되며, ‘서른 일곱째 해’ 라고 부름으로써 그가 정통성을 가진 왕처럼 소개되고있는 걸 보게 된다. 이로써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죽고, 눈이 뽑힌 비참한 말로와는 다른 정통성있는 왕이 아직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는 다른 왕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를 획득했다고 표현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열방 위에 다시 높이 세우실 날이 오리라는 소망을 엿보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혹하게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멸망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있다. 우리는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우리 주님 한 분 뿐이심을 고백해야한다. 우리 주님의 다스리심과 통치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줄 믿는다. 우리를 향한 계획은 재난이 아니라 ‘소망’이다. 겉으로는 재난 같은 일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의 ‘부활’로 그 신실하심이 증명된다. 따라서 재난을 재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로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온전히 있을 때뿐이다. 다시 일으키실 주님을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