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4:8-25:7
8 여호야긴은 왕이 되었을 때에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느후스다는 예루살렘 출신인 엘라단의 딸이다.
9 여호야긴은 조상이 하였던 것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10 그 때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이 도성을 포위하였다.
11 이렇게 그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동안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도성에 도착하였다.
12 그리하여 유다의 여호야긴 왕은 그의 어머니와 신하들과 지휘관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빌로니아 왕을 맞으러 나갔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왕은 오히려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갔다. 때는 바빌로니아 왕 제 팔년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의 마지막 시간들을 읽게 된다. 석달의 통치 시간은 대부분 예루살렘이 포위된 시간이었다. 느부갓네살은 항복을 받기 위해 리블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이제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감으로써 사실상 유다의 포로기가 시작된다.
13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궁 안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탈취하여 갔고,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만든 주님의 성전의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어서 깨뜨려 버렸다. 이것은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된 일이다.
14 더욱이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관리와 용사 만 명 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갔다. 그래서 그 땅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말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15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왕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그의 어머니와 왕비들과 내시들과 그 땅의 고관들을 모두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16 또 칠천 명의 용사와 천 명의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용사요, 훈련된 전사들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전’을 중심으로한 개혁과 통치와 하나님 중심의 통치철학을 가지는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다는 점을 지적해왔었다. 오늘 본문은 왕이 포로로 사로잡힘과 동시에 ‘성전’의 보물들이 강탈되는 것이 먼저 지적되고 있다. 성전의 보물과 금그릇들, 성전의 모든 것이 깨져버린다. 이것은 히스기야에게 이미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닌 바빌로니아의 힘을 빌리려던 일의 결과는 참혹했다.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사로잡아 가는 일이 기록된다. 여기에서 숫자는 ‘정확한 숫자’ 보다는 대략적 숫자로 보여지며, 어마어마한 인원과 예루살렘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인적역량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여준다.
17 바빌로니아 왕이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를 여호야긴 대신에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치게 하였다.
18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하무달은 립나 출신으로 예레미야의 딸이다.
19 그는 여호야김이 하였던 것과 똑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20 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그토록 진노하시게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주님 앞에서 쫓아내셨다. 시드기야가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기를 들었으므로,
1 시드기야 왕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고, 도성 안을 공격하려고 성벽 바깥 사방에 흙 언덕을 쌓았다.
2 그리하여 이 도성은 시드기야 왕 제 십일년까지 포위되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치게 만든다. 시드기야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반기를 들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우리는 앞선 본문에서 유다의 유력한 사람들을 끌고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예레미야 본문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적인 역량이 한참 후퇴한 상태에서 친 이집트적인 요소와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이 상당한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들과 싸워야만 했다.
시드기야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예레미야에서 두로와 시돈과 에돔, 모압, 암몬의 외교 대표들을 모은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반역은 성동적이지 못했다. 강력한 바벨론의 힘 앞에서 효과적인 연합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시드기야 구년 열째달 십일,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은 도성을 포위하고 흙 벽을 쌓고 성을 고립시켜 말려죽게 만드는 작전을 실행한다.
3 (그 해 넷째 달) 구일이 되었을 때에, 도성 안에 기근이 심해져서, 그 땅 백성의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4 드디어 성벽이 뚫리니, 이것을 본 왕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도성을 포위하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정원 근처, 두 성벽을 잇는 통로를 빠져 나와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였다.
5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추격하여, 여리고 평원에서 그를 사로잡으니, 시드기야의 군사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6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체포해서, 리블라에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로 끌고 가니,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7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에,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동일한 시도가 히스기야 시대에 앗시리아에게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그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함으로써 포위에서 순식간에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그렇지 못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시드기야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끝까지 반항한다.
강렬한 저항에 의해 성벽이 뚤리게 되고 멸망이 눈에 보이게 되자 시드기야는 밤을 틈타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도망’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또 다시 암몬 세력과 연합전선을 펼치기 위한 저항이었을 수 있다. 그런 시도마저도 실패하면서 시드기야는 결국 사로잡혀 리블라에 끌려가게 된다.
시드기야의 비참하고 처참한 결말은 ‘자녀들을 잃고’ ‘눈이 빠지는’ 형벌을 당하고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감으로 극대화된다.
열왕기 기록자는 매우 간략하게 이스라엘의 마지막을 기술한다. 마치 객관적 기록자가 되려는듯이 신학적 평가는 두고 사실을 눈에 본듯이 기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실재로도 이 자료는 이스라엘의 마지막을 역사적으로 기록한 기록물로 충분히 인정받고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의 시간들 속에 하나님은 어디에계시는가? 하나님은 이들의 심판에 완전히 침묵하시는것처럼 보이기까지하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고, 예언하신 일이었다. 그 일을 완성시키시고 이루실때까지 악의 창궐을 방치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 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악을 방관하시는게 아니라 관리하고 계신다. 우리는 내일 본문에서 이 심각한 파괴 속에서도 ‘남은 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일하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신실하심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우리의 충성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선명하게 발견될 것이다. 그 일이 속히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