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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위로자는 어디에 있는가? / 예레미야애가 1:12-2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길 가는 모든 나그네들이여, 이 일이 그대들과는 관계가 없는가? 주님께서 분노하신 날에 내리신 이 슬픔, 내가 겪은 이러한 슬픔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13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 불을 보내셔서 내 뼈 속 깊이 들어가게 하시고, 내 발 앞에 덫을 놓아서 걸려 넘어지게 하셨으며, 나를 폐인으로 만드셔서 온종일 힘이 없게 하셨다.
14 주님께서 내가 지은 죄를 묶고 얽어서 멍에를 만드시고, 그것을 내 목에 얹어서 힘을 쓸 수 없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내가 당할 수 없는 사람의 손에 넘기셨다.
15 주님께서 내 청년들을 무찌르시려고 내게서 용사들을 모두 몰아내시고, 나를 칠 군대를 일으키셨다. 주님께서 처녀 유다를 술틀에 넣고 짓밟으셨다.
‘내 뼈 속에 던져진 불’과 ‘내가 지은 죄로만들어진 멍에’에서 [나]는 예레미야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인가? 우리는 이 두 화자가 뒤섞여있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고통에 찬 고백임과 동시에 예루살렘이 내지르는 고통의 울부짖음이다.
하나님은 ‘불’을 보내셔서 뼈 속 깊이 태우신다. 이 불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불처럼 기능한다. 완전히 불태워버린 죄악의 도성처럼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말았다. 그들의 죄를 재료로만든 멍에는 포로로 끌고갈 수단이 된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무게에 대한 심판은 마치 술틀에 넣고 발로 밟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갱이가 남지않을 정도로 짓이겨지고 파괴된다.
16 이 일로 내가 우니, 눈에서 눈물이 물처럼 흐른다. 내게 생기를 되돌려 주고 위로하여 줄 이가 가까이에 없다. 원수들이 우리를 이기니, 나의 아들딸들이 처량하게 되었다.
17 시온이 손을 들어 빌었으나, 그를 위로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적들을 시켜서 야곱을 치게 하셨으니,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더러운 성으로 여기는구나.
18 주님께서 하신 일은 옳으나, 나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모든 백성아, 들어라. 이 고통을 보아라. 처녀 총각들이 사로잡혀서 끌려갔다.
19 내가 애인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배신하였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목숨을 이으려고 먹을 것을 찾다가, 성 안에서 기절하였다.
화자의 눈에서 눈물이 물처럼 흐르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른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만, 이 비참함 속에서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위로자가 없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이 끊임없이 자기의 사랑을 갈구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음란하게 섬겼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비참해진다. 그 신들, 그 나라들은 결국 아픔과 고통에 처한 예루살렘을 쳐다도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토록 예루살렘을 찾으셨었지만, 예루살렘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그분만이 유일한 위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일한 위로자이신 분을 멀리하고 다른 위로자를 자꾸만 찾아헤멘다. 오히려 예루살렘의 애인들을 불러보지만 ‘배신당하고 성 안에서 기절할’ 뿐이다.
우리는 열왕기하 말씀에 의해 시드기야의 마지막 순간, 또는 그달리야의 죽음에 앞장섰던 이스마엘까지도 이집트나 암몬, 모압 등의 나라들을 의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위로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20 “주님, 나의 절망을 살펴 주십시오. 애간장이 다 녹습니다. 내가 주님을 얼마나 자주 거역하였던가를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아픕니다. 거리에는 칼의 살육이 있고, 집안에는 사망이 있습니다.
21 사람들은 나의 신음을 듣지만,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내 모든 원수들이, 내가 재앙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고서 즐거워합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그 날이 이르게 해주셔서, 그들이 나와 같은 꼴이 되게 해주십시오.
22 그들의 모든 사악함이 주님 앞에 드러나게 해주시고, 그들을 엄하게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께서 내 모든 죄를 다스리신 것처럼, 그들의 죄도 다스려 주십시오. 끝없는 이 한숨소리, 심장이 다 멎을 듯 합니다.”
하나님께 절망을 호소하고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의 아픔을 고백하지만 ‘위로자’가 없다. 원수들을 하나님이 하신일임을 알고 즐거워하고있으니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화자는 자신을 모욕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똑같은 꼴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복수를 원하는 기도는 잘못되었는가? 이것은 단순한 복수를 위한 기도가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리라고 예고하셨었다. 그렇다면 이 복수는 ‘자신의 직접적인 복수’가 아닌, 신적 복수, 하나님께서 직접하시는 복수를 [그날]에 속히 행하시길 간구하는 기도다. 따라서 여전히 복수함으로 위로자가 되는 분도 하나님이 유일하시다.
우리는 우리의 유일하신 위로자를 알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고 아픔과 슬픔을 만지시는 분께서 우리의 삶에 상관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그 고통과 아픔과 처절한 수치와 멸시의 십자가를 당하지 않으셨더라면 초월자이신 분께서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은 기꺼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해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을 스스로 당하셨다. 여전히 우리에게 그 위로가 닿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님의 ‘그 날’,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완성시키시는 날, 우리의 모든 소망과 부르심이 완성되는 날, 우리의 모든 것들은 ‘완성’ 됨으로, 우리의 눈물도, 아픔도 모조리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참된 위로자가 우리 주님이시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속히 우리에게 그 완성시키심을 행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