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2 이 도성이 여인처럼 밤새도록 서러워 통곡하니, 뺨에 눈물 마를 날 없고, 예전에 이 여인을 사랑하던 남자 가운데 그를 위로하여 주는 남자 하나도 없으니, 친구는 모두 그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는가!
3 유다가 고통과 고된 노역에 시달리더니, 이제는 사로잡혀 뭇 나라에 흩어져서 쉴 곳을 찾지 못하는데, 뒤쫓는 모든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덮쳐 잡는구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과정을 직접 본 사람이다. 따라서 이 슬픔과 황망함을 깊이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보며 느끼는 감상이지만, 12-22은 예루살렘이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결국 예레미야와 예루살렘은 혼재될 수 밖에 없으며, 둘은 하나로 묶이게 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과부’, 여왕이었으나 종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여성형’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부부관계로 설명하는 전통에 따라서 소개되는 것과 같다. 3절은 이해하기 어려워보이는데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유다가 안식을 찾을 수 없는 나라들 가운데서 살게되었다고 이해하는것이 좋겠다. 이것은 신명기에 따라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 결과였다.
4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시온이 이렇게 괴로움을 겪는구나.
5 대적들이 우두머리가 되고, 원수들이 번영한다. 허물이 많다고, 주님께서 그에게 고통을 주셨다. 아이들마저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사로잡혀 끌려갔다.
6 도성 시온이 누리던 모든 영광이 사라지고, 지도자들은 뜯을 풀을 찾지 못한 사슴처럼 되어서, 뒤쫓는 자들에게 힘 한 번 못쓴 채 달아나고 말았구나.
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경험했던 종교적 영광이 사라졌음을 한탄한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약속의 땅에서 모든 생활방식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그 중심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이와 대비되는 것은 ‘원수들의 번영’이다. 원수들은 더욱더 번영하고 번성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방 신들에게 패배하신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고통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다.
7 예루살렘이 고통과 고난을 겪는 날에, 지난 날의 그 모든 찬란함을 생각하는구나. 백성이 대적의 손에 잡혀도 돕는 사람이 없고, 대적은 그가 망하는 것을 보며 좋아한다.
8 예루살렘이 그렇게 죄를 짓더니,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그를 떠받들던 자가 모두 그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서 그를 업신여기니, 이제 한숨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9 그의 더러움이 치마 속에 있으나, 자기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참해져도 아무도 위로하는 이가 없다. “주님, 원수들이 우쭐댑니다. 나의 이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대적의 즐거워하며 비방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의 죄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벌거벗음과 더러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은 이전에 예루살렘이 ‘여성형’으로 표현되는 것과 연결된다. 수치스러움을 가득안고있는 예루살렘이 조롱 당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를 용서하고 끌어안아줄 남편의 등장할때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먼저는 그녀가 남편을 떠났고 버렸다. 그러므로 그녀의 조롱받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이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에 긍휼을 바라며 하나님을 향해 고통을 살펴달라고 호소한다.
10 대적들이 손을 뻗어 보물을 빼앗습니다. 이방인이 주님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이미 금하셨으나, 그들이 성소에 침입하는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습니다.
11 예루살렘 온 백성이 탄식하며, 먹거리를 찾습니다. 목숨을 이으려고, 패물을 주고서 먹거리를 바꿉니다. 주님, 이 비천한 신세를 살펴 주십시오.”
예레미야의 호소는 온 백성이 탄식하고 먹거리를 찾으며 목숨을 이으려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서 3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는 나라들 가운데 살게 되었다고 호소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신부요 왕비같은 여성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수치스러운 여성이 되어 겨우 먹거리를 찾아 헤메는 비천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번영과 아름다움은 끝났다. 비참한 자기인식으로 가득차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한 끔찍한 결말임을 알기에 더욱 할말이 없이 고통스럽다. 완전히 버림받은 한 여성처럼 시인과 도성은 동일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끈질기게 ‘이 고통을 살펴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아야한다. 우리에게 비참한 현실이 닥쳐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 서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애써 매달려 호소할 때, 하나님의 신실하신 일하심과 약속은 결코 어김이 없이 성취되어 경험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모양이 어렵고 힘들어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를 포기치 말자.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