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 백성의 도성이 망하였다.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성 안 길거리에서 기절하니, 나의 눈이 눈물로 상하고, 창자가 들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
12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숨져 가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찾으며 달라고 조르다가, 성 안 길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처럼 쓰러진다.
13 도성 예루살렘아, 너를 무엇에 견주며, 너를 무엇에 맞대랴? 도성 시온아, 너를 무엇에 비겨서 위로하랴? 네 상처가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장하시며 자녀들을 낳고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신 분임을 증명하신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제 이 백성이 망할 징조는 ‘자녀 세대’의 굶주림과 몰락이다. 먹을것과 마실것이 없어 조르다가 기절하듯이 쓰러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예레미야의 표현대로 창자가 들끓고 간이 쏟아지는듯한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과 아픔을 어떤 것으로도, 누구라도 낫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14 예언자들은 네게 보여 준다고 하면서 거짓되고 헛된 환상을 보고, 네 죄를 분명히 밝혀 주지 않아서 너를 사로잡혀 가게 하였으며, 거짓되고 허황된 예언만을 네게 하였다.
15 지나가는 모든 나그네들이 너를 보고서 손뼉을 치며, 도성 예루살렘을 보고서 머리를 내저으며 빈정거리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더없이 아름다운 성이요 온 누리의 기쁨이라’ 하던 그 성인가?” 하고 비웃는다.
16 네 모든 원수들이 이를 갈며, 너를 보고서 입을 열어 빈정거린다. “우리가 그를 삼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 날이 아닌가! 우리가 이제 드디어 그것을 보았구나.”
이 비참한 상황에 일조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헛된 환상을 보고 죄를 덮어버리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의 신들과 싸워서 질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회개도 적당하면 된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거짓선지자들은 계속해서 ‘괜찮다’를 반복한다. 반복된 메시지는 아픈 부위와 썩은 것들을 도려낼 날카로운 칼과 같은 회개를 거부하게 만든다. 그것은 ‘아픔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수술, 그 마음을 절개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통회해야 할 기회들을 이미 놓쳐버렸다.
이것은 영적인 다음세대의 사망선고와도 같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부모세대가 지켜낼 수 있는 다음세대는 없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빈정거리며 놀라워하며 비웃는다. 원수들은 예루살렘의 영광이 무너진 것을 마치 기다리고 고대하던일이 벌어진것처럼 즐거워한다.
17 주님께서는 뜻하신 것을 이루셨다. 주님께서는 오래 전에 선포하신 심판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주님께서 너를 사정없이 부수시고, 네 원수가 너를 이기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네 대적이 한껏 뽐내게 하셨다.
18 도성 시온의 성벽아, 큰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어라.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려라. 쉬지 말고 울부짖어라. 네 눈에서 눈물이 그치게 하지 말아라.
19 온 밤 내내 시간을 알릴 때마다 일어나 부르짖어라. 물을 쏟아 놓듯, 주님 앞에 네 마음을 쏟아 놓아라. 거리 어귀어귀에서, 굶주려 쓰러진 네 아이들을 살려 달라고, 그분에게 손을 들어 빌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물론 ‘파괴’ 자체를 정하신것은 아니다. 그들이 ‘불순종할 때’의 결과를 뜻하신 것이었다. 그들의 불순종에대한 비참함의 결과는 오직 ‘파괴’뿐이다. 따라서 시온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한다. 밤낮으로, 쉬지않고 부르짖어야 한다. 마음이 쏟아져 내리듯이 곳곳에서 울부짖어야한다. 특별히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돌보아달라고 간절히 그분께 외치고 부르짖어야 한다.
20 “주님, 살펴 주십시오. 주님께서 예전에 사람을 이렇게 다루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여자가 사랑스럽게 기른 자식을 잡아먹는단 말입니까? 어찌 주님의 성전에서, 제사장과 예언자가 맞아 죽을 수 있습니까?
21 젊은이와 늙은이가 길바닥에 쓰러지고, 처녀와 총각이 칼에 맞아 넘어집니다. 주님께서 분노하신 날에, 그들을 사정없이 베어 죽이셨습니다.
22 주님께서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마치 명절에 사람을 초대하듯, 사방에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살아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사랑으로 고이 기른 것들을 내 원수들이 모두 죽였습니다.”
끔찍한 비극이 나열된다. 이전에 지적된 굶주려 쓰러진 아이들을 잡아먹는 부모가 등장한다. 제사장과 예언자는 성전에서 맞아 죽는다. 젊은이와 늙은이와 처녀와 총각이 칼에 맞아 넘어지고 쓰러진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들은 명절에 사람들이 성전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듯, 적들과 환란과 파괴가 쏟아져들어오고있다.
과연 미래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는가? 하나님은 이 비참한 파괴적인 약속에 신실하심으로 그분의 일을 마치시는가?
우리는 자녀들을 잡아먹는 이 끔찍한 일들이 지금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미래세대를 저당잡고 그들의 일자리와 사랑과 풍요로움을 당겨 소비하고있다. 젊은 세대의 굶주림과 고통과 포기되어 아무것도 할 기력이 없는 무기력감은 본문의 기절한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말한다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참으로 이 시대는 회개해야 할 때이다. 밤낮 부르짖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시기이다.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이 있어야 다시금 다음세대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오로지 미래와 신실하신 약속은 ‘하나님’께만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로 죽은 자를 살리신 분께서 부활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의 가장 비참하고 어려운 상황조차도 하나님께서 역전시키셔서 다시살리실 수 있음을 믿는다. 오늘 그 다시 살려주심을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