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살려 주십시오. 못들은 체 하지 마시고, 건져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57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58 주님, 주님께서 내 원한을 풀어 주시고, 내 목숨을 건져 주셨습니다.
59 주님, 주님께서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보셨으니, 내게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화자가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 간구를 들어주신다. 그 부르짖음 속에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지금 화자가 경험하고 있는 상태를 생각해보면 이 답변은 충격적일 수 있다. 민족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린것처럼 절망스러운 상태에서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응답하시지 않고 지금 응답하시는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응답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경험될 것인가? 오히려 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지 않을까.
그러나 화자는 이 응답에 상황과 현실이 전혀 달라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에 확신있게 반응한다.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고백이 ‘경험적 고백’이 아닌, ‘의지적 고백’이었다는 점을 나눴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주시고, 목숨을 건져주신다. 이것은 아직 경험되지 않았지만, ‘확신있는 고백’이다. 이 억울한 일에 ‘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더욱 소리높여 호소한다.
60 주님께서는 나를 치려는 그들의 적개심과 음모를 아십니다.
61 주님, 주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두고 하는 모든 야유와 음모를 들으셨습니다.
62 내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헐뜯고 모함합니다.
63 그들은 앉으나 서나, 늘 나를 비난합니다.
하나님께 원수들이 하는 적개심과 음모, 야유, 모함, 비난들을 다 알고 계심을 전제로 그들의 악함을 상세하게 호소한다. 하나님은 심판자시므로 억울한 자의 탄원을 들으시리라고 확신한다. 그들의 적개심과 음모, 모함과 비난은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에게 ‘허용’하신 것이라도, 그 ‘악’ 자체를 심판 없이 넘기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그들의 악 그 자체에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혀용’은 결코 ‘방치’ 되지 않는다. 그분이 정하신 때와 방법으로 그 모든 것들을 관리하시고 제어하신다. 그러므로 고통당하는 화자는 용기있고 힘있게, 지금 상황과 환경이 전혀 그 응답과 해소를 볼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확신있는 고백’ 이다.
64 주님, 그들이 저지른 일을 그대로 갚아 주십시오.
65 그들의 마음을 돌같이 하시고,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
66 진노로 그들을 뒤쫓아, 주님의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게 하여 주십시오.”
성경 기자들의 위대한 고백 뒷편에는 그들의 복수와 억울함의 해소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결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런 ‘복수’는 반드시 인간적인 면에서의 ‘악’이 담길 수밖에 없고, 그런 ‘악’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에의해 다시금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더이상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가장 공의로운 판정과 판결과 심판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그들의 마음을 돌같이 해달라는 고백은 그들이 ‘돌이켜 회개할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해달라는 말일 것이다. 이 강력한 주문은 그들이 제아무리 잘못을 깨달았더라도, 혹은 상황을 바꾸려고 해봐도 ‘하나님을 찾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심판이 거침없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그렇게 ‘돌과 같은 마음’ 때문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때 이 끔찍한 심판의 해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본문의 화자는 진노로 악인들을 뒤쫓아 하늘 아래 살 수 없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들의 악을 하나님은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의 시간은 영원하고 그분의 손 아래 모든 우주의 생명과 운명이 달려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도우심이 우리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프랜시스 톰슨이 ‘하늘의 사냥개’ 라고 이름 붙인 시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구원하시려는 자들을 향한 간절한 원함으로 달려오시며 반드시 그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오로지 주님의 사랑에 붙들린 자들이 그 은혜 속에서 확신있는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다. 우리는 이 확신이 어떤 ‘경험적 지식’을 뛰어넘는 ‘확정적 지식’ 이고, ‘계시된 지식’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오로지 택자들에게 부어주시는 놀라운 지식이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쁨은 우리의 ‘절망적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고백되어야 한다. 오늘 이 구원의 놀라운 ‘확신있는 고백’이 올려드려지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