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41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하나님의 신실하신 갚아주심을 붙들기로 작정했다면, 이제 ‘회개’ 하며 주님께 돌아가야한다!
다른 어떤 신적 존재들, 다른 어떤 의지할 존재들이 있을 수 없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스리시는 분을 신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 긍휼과 사랑을 구하는 소망만이 다시 살아날 유일한 방법이다.
42 “우리가 주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43 주님께서 몹시 노하셔서, 우리를 쫓으시고, 사정없이 죽이셨습니다.
44 주님께서 구름을 두르셔서, 우리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45 주님께서 우리를 뭇 민족 가운데서 쓰레기와 오물 더미로 만드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보고서 입을 열어 놀려댔습니다.
47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폐허뿐입니다.
화자의 기도는 돌이키는 회개의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고, 범죄에 대하여 용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 노하심과 쫓아내심과 사정없이 죽이시는 형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다. 하나님께 올라갈 기도는 막혔고 현실은 쓰레기와 오물 더미 속에 놓여져 있는 것 같다. 대적들은 비아냥 거리며 손가락질 하기에 수치심으로 어찌할바 모르는 민족이 되었다. 오로지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폐허가 되었다.
이 끔찍한 자기 인식이 ‘범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의 말과 다르다.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거짓 신들’에게 패배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런 거짓 신들에게 패배할 수 없으시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의 교묘한 거짓말은 ‘하나님이 강하신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전쟁의 결과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은 결코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신적 전쟁’의 패배가 아니다. 오직 정의와 공의에 실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범죄 결과’ 내려진 정의로운 ‘심판’일 뿐이다.
48 내 백성의 도성이 파멸되니, 나의 눈에서 눈물이 냇물처럼 흐릅니다.
49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쉬지 않고 쏟아집니다.
50 주님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립니다.
도성이 파멸됨으로 눈물이 냇물처럼 흐를 수밖에 없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눈물은 깊은 상처와 절망과 고통을 대변한다. 그러나 화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길 ‘기다리기’로 작정한다. 앞선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의지적 고백’이며 ‘인내하기로 한 결단’이다. 눈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기로 작정’ 하는 것은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한 결단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화자는 의심없이 하나님을 기다리기로 선택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저 고통에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범죄한 자들이 하나님께 돌이켜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죄를 사하며 고쳐 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보장된 은혜의 복이었다.
51 도성에 사는 모든 여자가 겪은 일을 보니, 내 마음은 슬픔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52 까닭없이 내 대적이 된 자들이 새를 사냥하듯 나를 쫓습니다.
53 그들이 나를 산 채로 구덩이에 처넣고, 돌로 막아서 못 나오게 하였습니다.
54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쳤으므로,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55 주님, 그 깊디 깊은 구덩이 밑바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가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압도될 만한 괴로움으로 가득차있다. 도성에 사는 여자들이 겪은 일은 가히 상상만으로도 끔직하다. 미래는 삭제되고 비참하고 잔혹한 범죄들이 상상된다. 아무런 힘없이 당하는 공격에 산채로 구덩이에 갇히며 물이 덮려와서 넘침으로 ‘죽음’을 예상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성급한 연결이지만, 이 깊은 고통의 현장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몸부림치는 한 존재의 호소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고통에찬 호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일시에 받아들이신 사건의 적절한 반응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그분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바 되었고 수치와 비참한 모습으로 성밖으로 쫓겨났다. 그분의 죽음을 여인들이 슬퍼했으며 무덤에 들어가셨고 돌이 그 문을 막았으며, 스올의 물이 주님의 영혼을 잠식한것 같이 사흘을 무덤에서 보내셨다.
그러나 우리는 신실하신 주님의 의지하심이 어떻게 ‘부활’의 영광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역경의 호소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매달리는 것이다. 우리의 죄악이 주님께서 덮어주심으로 매달려지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을 경험할 때 우리의 의지적 결단으로 ‘인내한’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놀라운 보상으로 돌아오니 그것이 우리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그 십자가 위에 주님과 함께 연합하기를 다시한번 결단하자. 그 회개와 돌이킴 속에서 우리 주님의 신실하신 일하심이 비로소 능력과 권세로 우리 삶을 온전케 하심을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그 일 행하시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