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슬프다. 어찌하여 금이 빛을 잃고, 어찌하여 순금이 변하고, 성전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흩어졌는가?
2 순금만큼이나 고귀한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하여 토기장이들이 빚은 질그릇 정도로나 여김을 받는가?
3 들개들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려 빨리는데, 내 백성의 도성은 사막의 타조처럼 잔인하기만 하구나.
4 젖먹이들이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고, 어린 것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여도 한 술 떠주는 이가 없구나.
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그 희소성이 가치를 더해 값비싼 광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오늘 화자는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하고’ [성전 돌들이] 흩어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금과 순금처럼 성전의 돌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로 그 ‘가치’를 더하였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고귀한 성전이 부숴지고 흩어져버렸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벌어진 일이고, 비참한 일이다.
이 참혹한 ‘영원성’의 변질은 심지어 [인간성]마저 변질시키고만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갖는 무한한 모성과 부성의 사랑이 ‘변질’되었다는 데서 온다. 들개들도 새끼에게 젖을 물려 빨리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사막의 타조’처럼 잔인하다. 욥기를 살펴보면 이 시대 사람들이 갖는 타조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 타조는 미련한 동물이어서 알을 흙속에 낳는다. 그것이 밟혀서 깨질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새끼 타조들을 거칠게 다뤄서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다룬다고 말한다. 물론 성경시대의 관찰자들의 시각이지만, 어쨌든, 그만큼 예루살렘 도성은 기본적인 ‘인간성’인 부성과 모성이 사라져 ‘아이들이 죽더라도’ 마치 타조 알이 밟혀서 깨지는 정도의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5 지난 날 맛있는 음식을 즐기던 이들이 이제 길거리에서 처량하게 되고, 지난 날 색동 옷을 입고 자라던 이들이 이제 거름 더미에 뒹구는구나.
6 예전에는 저 소돔 성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내 백성의 도성이 지은 죄가 소돔이 지은 죄보다 크구나.
7 예전에는 귀하신 몸들이 눈보다 깨끗하며 우유보다 희고, 그 몸이 산호보다 붉고, 그 모습이 청옥과 같더니,
8 이제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더 검고, 살갗과 뼈가 맞붙어서 막대기처럼 말랐으니, 거리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이가 없구나.
화자는 금과같이 변하지 않을 것들이 변화된 것에 대한 충격과 더불어 이제 성 내부에 벌어진 ‘변질된 것들’에 대해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들은 사라졌다. 색동 옷을 입고 자라던 아이들은 거름 더미에 뒹굴고 있다. 소돔의 끔찍한 악에 대한 결말처럼 예루살렘은 소돔보다 더 큰 죄악으로 그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높은 위정자들의 몸은 희고 깨끗하고 붉고 청옥같은 고귀한 모습이었는데, 숯보다 검고, 막대기처럼 마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미 변하지 않아야할 ‘영원성’을 가진 것들조차 변질되고 있으니, 그 속에 담긴, 변하기 쉬운 것들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9 굶어 죽은 사람보다는 차라리, 칼에 죽은 사람이 낫겠다. 다쳐서 죽은 사람이, 먹거리가 없어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낫겠다.
10 내 백성의 도성이 망할 때에, 자애로운 어머니들이 제 손으로 자식들을 삶아서 먹었다.
신속한 죽음이 오히려 은혜처럼 느껴진다. 굶어죽는 고통, 그 지속되고 오래이루어지는 쥐어짜여진 고통은 저주에 가깝다. 이 비참한 재앙은 변질되지 않을 것 같은 황금의 도성과 자애로운 모성애로 가득한 도성을 파괴와 살육으로, 끔찍한 모성의 변질로, 생존의 욕구로 바뀌어버렸다. 이 참혹하고 잔혹한 도시의 멸망은 이들의 ‘형식적 파괴’가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영원성을 가진 것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비참한 일들의 경험은 더욱 커다란 문제들을 압축해놓은 것 뿐이다. 그것을 뛰어 넘어 본질의 훼손과 영원성을 잃어버린 것이 더욱 참혹한 일이다. 그 안에서부터 썩어갔던 범죄들은 밖으로 흘러넘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썩은 사과이론이라는게있다. 사과 상자 안에 썩은 사과 하나만 있어도 그 상자 안의 모든 것이 다 썩어버린다. 문제되는 요인을 내버려두면 그 틀 자체가 오염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오염된 틀 안에 새로운 것을 넣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썩은 사과들을 다 버리고 썩은 상자 안에 새로운 사과를 넣어도 그 썩은 상자 안의 사과는 모조리 썩어버린다. 결국, 내용물도, 틀도 청소되지 않으면 안된다.
주님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영광스러운 새 모형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그 안의 내부의 부패들은 ‘부정한 인간들’에 의해 얼마든지 썩고 오염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로, 영원하고 본질적인, 우리 주님의 영원하신 형상을 닮아가려는 썩지않는 영광 안에 담긴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새롭게 해주시는 은혜를 맛보게 될 줄 믿는다. 그 안에서만이 우리의 ‘인간성’도, ‘영원성’도 되찾을 수 있다. 오로지 우리를 새롭게, 영원함으로 참되게 이끌어주실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