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 우리가 겪은 일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 주십시오.
2 유산으로 받은 우리 땅이 남에게 넘어가고, 우리 집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화자는 이 ‘치욕’을 살펴 달라고 호소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얼마나 끈질기게 돌아봐달라고 기도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는 예레미야 애가의 화자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확신있는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고 고백했는지 살펴오고있다.
렌케마(Renkema 1998: 589)는 이 절들에 나타나는 일련의 명령형은 예레미야애가 5:1을 ‘구약성경에서 발견되는 가장 끈질긴 기도로 만든다’고 주석한다.11 헤티 랄레만, 예레미야·예레미야애가, ed 백승현와/과정재원, trans 유창걸, 초판, vol 21,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570.
이어지는 구절에서 약속의 땅과 집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הפך 는 변질되다, 반역하다, 되돌아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출애굽 이전으로 돌아가버리는 듯한 이미지를 갖는다. 결국 이들은 이집트에서 당했던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되고, 어머니는 홀어미가 되었습니다.
4 우리 물인데도 돈을 내야 마시고, 우리 나무인데도 값을 치러야 가져 옵니다.
5 우리의 목에 멍에가 메여 있어서, 지쳤으나 쉬지도 못합니다.
아버지 없는 고아, 홀어미로 표현되는 것들은 ‘전쟁’을 생각하게 만든다. 노역으로 끌려간 포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빼앗겨서 돈을 주고 사서 먹고 값을 치러야하는 상태다. 쉬지도 못하고 멍에가 매여 있음에도 지쳐있다고 호소한다. 이런 표현들 자체가 [역출애굽]의 상태로써 다시금 안식이 없어 고통속에 절박하게 부르짖던 이집트의 노예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은 분명히 지금 역출애굽의 상태다.
6 먹거리를 얻어서 배불리려고, 이집트와도 손을 잡고 앗시리아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7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이제 그들은 가고 없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8 종들이 우리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들 손에서 우리를 구해 줄 이가 없습니다.
9 먹거리를 얻으려고, 쫓는 자의 칼날에 목숨을 내겁니다.
10 굶기를 밥먹듯 하다가, 살갗이 아궁이처럼 까맣게 탔습니다.
이들의 참혹한 종살이의 상태는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열왕기하의 내용에 따라서 이런 동맹이 ‘바빌로니아’를 맞서기 위한 조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그들로하여금 ‘자기를 종살이하게 만들었던 나라’, ‘민족을 파괴한 원수의 나라’와 손잡았다는 치욕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들의 선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들의 참혹한 선택이 그럴수밖에 없었음을 굶어서 살갗이 아궁이처럼 까맣게 타버린 모습으로, 아이들을 잡아먹는 부모의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비참한 모습의 원인은 ‘죄’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는 ‘죄’를 지은 것은 조상들인데 그들은 사라지고 자녀세대가 이 죄를 짊어지고 있노라고 한탄하며 호소한다. 이 죄를 해결하고 억울한 종살이와 배고픔을 해결해줄 새로운 모세, 다윗의 자손, 하나님의 기름부어주신 왕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 비참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과연 손쉽게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도 자신있게 올마른 선택만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것보다 본능적이어서 우리의 선택을 왜곡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다.
감사하게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노예나 전쟁중에 상실한 아버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참된 자유와 풍성함을 제공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의 자녀로써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한 우리는 아버지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인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으로 우리 주님의 공급하심은 언제나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나라는 빼앗기지 않고, 소멸하지 않고, 멸망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그분의 나라와 임재를 구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먹고 마시는 문제가 이 세상의 것으로만 해결되지 않으며 우리 주님께서 제공해주시는 것으로 언제든지 다시 채워짐을 얻게 될 줄 믿는다. 그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