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온에서는 여인들이 짓밟히고, 유다 성읍들에서는 처녀들이 짓밟힙니다.
12 지도자들은 매달려서 죽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13 젊은이들은 맷돌을 돌리며, 아이들은 나뭇짐을 지고 비틀거립니다.
14 노인들은 마을 회관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시온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은 전방위적이다. 여인들, 지도자들, 장로들, 젊은이,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슬픔과 괴로움과 힘겨운 노동과 비참함으로 가득차있다. 언급하고있는 세대, 성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모든 이들이 비참함으로 가득차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재앙의 끝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오게 되는 날, 남종과 여자, 젊은이와 늙은이 모두가 성령을 받게 될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날이 오기 전에 모든 세대는 이 비참함 속에 울부짖고 있다.
15 우리의 마음에서 즐거움이 사라지고, 춤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16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으니, 슬프게도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7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의 가슴이 아프고,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18 시온 산이 거칠어져서, 여우들만 득실거립니다.
우리는 분명히 마지막 날이 올 때, 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며 절망의 노래가 춤과 찬양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즐거움은 슬픔으로, 춤은 통곡으로 바뀌었다. 예루살렘의 영광은 사라졌다. 면류관은 사라져 절망으로 변질되었다. 왕은 사로잡혔고, 죽었다.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줄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죄’ 때문이다.
죄는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는다. 보고 듣는 존재인 하나님 형상은 그 마음의 둔하여 짐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눈은 밝음으로 빛나야 하지만 어두워짐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다. 이들에게 심판이 임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온의 거칠어짐은 ‘여우가 득실거림’으로 경험되는데, 여우는 광야에 살아야 하는 존재다. 따라서 시온이 얼마나 처절하게 파괴되었는지, 마치 ‘광야’처럼 돼버렸다.
19 주 하나님, 영원히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보좌는 세세토록 있습니다.
20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며,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려 두십니까?
21 주님,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화자는 그럼에도 다시 끈질기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간절히 구한다. 전혀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황폐한 황무지요, 광야가 되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포기치 않는다. 주님의 보좌는 ‘성전의 파괴’로 말미암아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한 보좌가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시간의 영원함으로, 공간의 무한함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으셨는가? 버리셨는가? 분명 그럴만한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옛날과 같은 날을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한다. 그 요청의 근거는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다. 오직 주님께 돌아가는 것만이, 주님의 돌아와 주심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며 되돌아가기를 결단하는 이들의 외침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돌아가 주님의 성령께서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복되고 즐거운 일인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보혈의 능력으로 제거하시고 우리의 슬픔과 황폐함을 변화시켜 기쁨과 찬양으로 변화시키심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본문의 화자는 기쁨과 노래가 슬픔으로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기쁨과 주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과 무한하신 공간 속에 우리의 만족과 기쁨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십자가 앞에 설 때’ 가능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그 은혜와 사랑을 쟁취할 수 없다. 오로지 주님께서 제공해주시는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자들만이 그 풍성함을 허락받는다. 오늘 그 놀라운 사랑을 사모하며 주님의 십자가로 되돌아가기를 선택하자. 그 앞에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임재와 사랑에 우리의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는 은혜를 경험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