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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어려움과 괴로움을 통과하는 방법 | 디모데전서 1:12-20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능력은 11절에서 ‘복음을 선포할 임무’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이 ‘말이 아닌 삶’이라고 정리했으며, 영광스러운 삶의 모습이라고 나눴다. 따라서 바울이 받은 능력은 그런 삶을 살게 하시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 직분을 허락하셨고 살게하시며 모범을 보이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 열매맺게 하셨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삶은 이전에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설 정도로 복음을 극도로 거부했다.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훼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 바울은 이것이 ‘믿지 않을 때, 알지 못하고 한 것’ 이라고 한다. 믿음과 앎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주목해보자. 불신앙과 무지는 훼방과 박해, 폭행으로 이어져있지만, 믿음과 앎은 ‘복음을 선포할 임무’와 ‘능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앎과 연결될 것이다.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심은 ‘믿음’을 확정시킬 것이다. 이 안에서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된다. 믿음과 앎으로 드러난 것은 바울 자신이 ‘죄인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율법’이 적극적으로 작동된다. 믿음과 앎은 ‘율법’의 기준에 따라서 부인할 수 없는 죄인의 우두머리임을 확인시킨다. 동시에 율법을 완성시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과 앎은 ‘자비’를 얻게 만드신다. 그 끝없이 참아주심의 사례를 통해 ‘율법’의 기준에서는 죄인의 괴수로, 자비의 기준에서는 복음을 선포할 거룩한 능력을 주신 것으로 경험된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의 능력은 ‘영생’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 능력을 주시는 분은 영원하신 왕이시며 없어지지도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은혜의 능력을 제공해주신 분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빈다는 찬양은 정당하다.
18 아들 된 디모데여, 이전에 그대에 관하여 내린 예언을 따라 내가 이 명령을 그대에게 내립니다. 그대는 그 예언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 생활에 파선을 당하였습니다.
20 그렇게 된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바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입니다. 나는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응징해서, 다시는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가 어떤 예언에 따라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젊은 시절부터 교회의 지도자로써 역할을 감당했고, 장로들에 의해 안수받을 때 예언을 받았다는 점등은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예언을 떠나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을 생각해보면, 지금 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해오고있는 믿음과 앎을 통한 참된 복음 경험이 삶의 체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복음을 선언할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 곧 예언의 핵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회 지도자로써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예언, 특별히 에베소와 관련된 어떤 예언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예언 조차도 참된 복음 경험으로 능력을 얻어 복음을 선언하는 삶 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결국 궁극적 예언은 이 참된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생’을 경험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디모데는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쟁취하며 복음을 살아내고 선포할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믿음과 앎으로 복음을 경험한 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 특별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이 믿음에서 파선했다. 사도 바울이 이들을 응징해서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1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출교와 같은 강력한 치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치리받은 자들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느냐는 질문을 해보면서 이 치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할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을 모욕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씀에 따라서 이들이 이 ‘구원’에 대한 아주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디모데후서에 따라서 그들이 ‘부활’을 부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한다. 치리의 목적은 ‘고쳐서 돌이키게’ 만드는 것이지 ‘저주’와 ‘파멸’이 아니다. 이것은 정말 치열한 싸움일 것이다. 더욱 어려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은 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며 가르침이다.
우리는 믿음과 앎이 어떤 방식으로 삶의 체계를 만들고, 복음을 살아내게 만들고, 자기를 인식하게 만드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잘못된 앎이 잘못된 믿음과 무시무시한 심판대 앞에 서게 만들 수 있음도 살펴보았다. 오직 자기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할수 밖에 없는 자들은 율법의 순기능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활의 영광을 구하며 오로지 주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의지하려는 참된 능력의 삶 속에 있게 만든다. 그러나 ‘율법’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고 자신을 ‘의인’으로 규정하려고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게 됨을 알아야한다. 오늘 우리에게 참된 믿음과 앎이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길 소망한다. 죄인된 나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주님의 자비와 은혜만이 나를 살게 만드시는, 능력있게 만드시는 유일한 이야기임을 고백하자. 그리고 오로지 이 복음만이 우리를 ‘영원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길임을 붙들자. 그 속에서 우리의 참된 예언, ‘부활’이 반드시 성취될 줄 믿는다. 이 참된 믿음과 앎이 우리에게 있기를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