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선 본문들에서 에베소의 문화적 환경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기계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오히려 사도 바울이 인권신장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과부들의 삶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혹독했을 당시의 상황에서 성도라고 불리면서도 세속적인 책임조차도 다하지 않고 과부들을 등한시하는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배경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바울의 이 제안을 단지 ‘과부’에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언급으로 읽기보다 생각을 확장해서 바울이 가졌던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하나님의 가족, [교회]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묵상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과부의 자격 또한 장로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삶으로 구현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교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도, 그것을 섬기는 사람도, 이 구성원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사람도, 보호하는 사람도 모두 ‘복음’을 삶으로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첫번째이다.
이것이 [교회 밖]의 선교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질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결국 이들의 변화된 삶은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으로 살아낸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이들, 그들을 섬기기 위한 일들, 그 안에서 변화되는 모든 것들이 이 ‘복음’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면 전할 수록, 복음이 살아내지면 살아내질 수록 그 혜택과 풍요로움은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빵이냐 복음이냐를 구분할 필요도 없다. 자생할 수 있는 힘이있는 이들은 ‘복음’을 살아낼 기회도 시간도 자격을 증명할 기간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긴급한 이들에게는 당연히 긴급한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 교회가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증명되는 것은 ‘복음’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복음’으로 살아내는데 교회의 ‘다름’이 증명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복음으로 다른 삶이 증명되는 참된 은혜의 증거들이 드러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