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교절 첫째 날에,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가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게 준비하려 하는데, 어디에다 하기를 바라십니까?”
13 예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를 따라 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사랑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는 자리를 깔아서 준비한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거기에 우리를 위하여 준비를 하여라.”
무교절 첫째 날 이라는 말로 인해서 시간의 타임라인이 요한복음과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식사의 사실성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곤한다. 하지만 유대교 전통에서는 희생제물이 공식적으로 준비된 날의 이른시간부터 첫째 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저녁’부터 첫째 날의 시간이다. 그리스-로마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진다는 점을 이해할 때 오류는 보정될 수 있다.
어쨌든,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 장소와 음식 준비를 예수님께 질문한다.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 때도 예수님께서 모든 결정들을 직접 하셨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월절 음식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이미 준비된 상황으로 이끌어가신다. 모든 상황과 환경, 장소 등은 예수님의 주도에따라서 준비될 것이다.
이 식탁이 예수님의 작별 식사라는 생각이 주도적인 심상을 갖지만, ‘생명’을 수여하시는 식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바로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직접 식탁의 장소와 음식을 미리 준비하시며 직접 유월절 양이 되셔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실 것이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선택이었음이 선명하게 강조된다.
16 제자들이 떠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17 저녁때가 되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가셨다.
여기에서 식사의 주도적인 역할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게 계속해서 강조되고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큰 다락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좁은 공간이 아니라 삼십명 이상을 수용하는 주방이기도 해서 일반적으로 일 층짜리 소작농 집이 아닌 비교적 부유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는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 앞으로 이 식사의 장면은 더 자세히 설명되겠지만, 이 시간으로부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은 잡히시고 끌려가실 것이다. 그야말로 최후와 마지막의 식탁이다. 예수님은 그 시간을 결코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시간을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공로에 대한 분배와 수여에 얼마나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식탁이 자신을 어떻게 주셨는지에 대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억하고 기념할 이야기와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어가실 것이다. 이 저녁에 가진 식탁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공급받을 생명의 식탁이다.
18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19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 생명의 식탁에 자리를 앉았음에도 배도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배신은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뤄진게 아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은 그 사실을 몰라서 ‘나는 아니지요?’라고 질문하고 있지만, 예수님께는 아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 모든 것을 허용하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실 것이다.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과 끝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가시는 예수님. 그 사이에서 배신자는 다만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는 생명의 말씀이 뿌려졌지만, 잠시 심겨졌을 뿐 돈과 재물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21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시편 41편에 ‘내가 믿는 나의 소꿉동무, 나와 한 상에서 밥을 먹던 친구조차 내게 발길질을 하려고 뒤꿈치를 들었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21절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인자를 넘겨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 일을 직접 선택하시고 행동하시고 순종하시고 복종하신다. 십자가는 수동적으로는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있으나 능동적으로는 직접 일하시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식탁에서 풍요롭고 놀라운 생명을 제공받는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있는힘을 다해 준비하셨고 순종하셨는지를 보게 된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이 놀라운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의 순종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순종이 적극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밭을 갈고, 걸려 넘어질 것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지 않는다면, 무지했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순간을 알지도 모른채 지나가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온전하고 적극적인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길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