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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뱀과 독, 치유의 이유/ 사도행전 28: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뱀과 독, 치유의 이유/ 사도행전 28: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우리가 안전하게 목숨을 구한 뒤에야, 비로소 그 곳이 몰타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2 섬 사람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비가 내린 뒤라서 날씨가 추웠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3 바울이 나뭇가지를 한 아름 모아다가 불에 넣으니, 뜨거운 기운 때문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서,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다.
4 섬 사람들이 그 뱀이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자이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지만, 정의의 여신이 그를 그대로 살려 두지 않는다” 하고 서로 말하였다.
5 그런데 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버리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6 섬 사람들은, 그가 살이 부어 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으려니, 하고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자,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서, 그를 신이라고 하였다.
파선한 배에서 모든 인원은 안전하게 섬에 상륙했다. 섬 사람들은 친절을 베풀어 불을 피워 맞아준다. 아마 바다에서 힘겨운 씨름을 하고 나온 사람들에게 베푼 선의였다. 하지만 모든 인원들이 다 모닥불에 앉았을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고위직의 로마 군인들은 따로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이 따로 모닥불에 둘러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어쨌든 바울이 나뭇가지를 한 아름 모아다가 불에 넣자 독사가 한 마리 튀어나와 바울의 손에 달라붙는다. 섬 사람들은 그 뱀을 보자 바울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자들은 몰타 섬에는 ‘독사’가 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성을 의심한다. 하지만 몰타 섬에 없는 ‘뱀’이 갑자기 바울을 문 것이라면, 섬 사람들도 잘 모르는 뱀을 ‘독사’로 인식하는 것은 더욱 확실하며 이 뱀의 위험성과 죽음을 예고한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하지만 바울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섬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는 마가복음 16장의 말씀 처럼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떠올려볼 수 있다. 분명히 사도는 뱀을 집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았다. 이런 기적은 단지 ‘살았다’에서 의미를 찾아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 뒤에 온다. 바울은 ‘로마’를 향해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길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서 우리 주님의 보호하심은 강력한 사망의 위기를 계속해서 넘기도록 만드신다. 사람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루스드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오해가 벗겨지자 매우 냉담한 자들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과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가?
7 그 근처에 그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가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그리로 초대해서, 사흘 동안 친절하게 대접해 주었다.
8 마침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서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손을 얹어서 낫게 해주었다.
9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 섬에서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도 찾아와서 고침을 받았다.
10 그들은 극진한 예로 우리를 대하여 주었고, 우리가 떠날 때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다가 실어 주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치유해주는 장면이다. 앞선 말씀에서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겠다는 말씀에 이어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고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원주민들은 당시의 기준에서도 ‘야만인’들로 분류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땅 끝’이 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뱀을 집어들고, 독에도 죽지 않고, 병든자에게 손을 얹고 낫는 기적과 신비를 체험했는데, ‘이들이 회심했다’라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과연 회심했을까? 누가의 기술 방식에 따르면 그들이 회심했다는 사실, 눈으로 본 것을 자세히 서술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회심’에 대해서는 철저히 ‘속단’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들이 회심했다는 증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기적’은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적’은 그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지 결정적인 ‘키포인트’가 될 수는 없다. 아마 시간이 더욱 충분했다면 열린 그들의 마음 문 속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잇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의 실행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기적이 일어나길 구했다.
11 석 달 뒤에 우리는 그 섬에서 겨울을 난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났다.
12 우리는 수라구사에 입항하여 사흘 동안 머물고,
13 그 곳을 떠나, 빙 돌아서 레기온에 다다랐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남풍이 불어왔으므로, 우리는 이틀만에 보디올에 이르렀다.
14 우리는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서, 그들의 초청을 받고, 이레 동안 함께 지냈다. 그런 다음에, 드디어 우리는 로마로 갔다.
15 거기 신도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서, 아피온 광장과 트레스 마을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왔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드디어 긴 여정 끝에서 드디어 ‘로마’에 당도하게 된다. 로마에서 할 일은 더욱 선명하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전도의 장은 ‘로마 황제’ 앞이 될 것이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바울의 여정이었다. 그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용사 같다. 그러나 ‘죽음’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한다. 바울이 달려가는 길 가운데 폭풍과 풍랑도 잠잠하고 독사의 독도 해를 입히지 못하며 죽음의 질병도 고침받고 치유받을 수밖에 없다.
살펴본것처럼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보호와 기적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주객전도되어 ‘기적’이 목적이 되면 그것은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자들 중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 내고 많은 권능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적과 권능’이 하나님의 나라에 곧장 들어가는 티켓이 아니다. 주님은 오로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단언하셨다.
사도 바울의 여정이 마쳐가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뱀을 집어 들고, 독에 해를 받지 않고 병든자에게 손을 얹고 낫게 되는 ‘기적’의 연속들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이 노회한 선교사는 기적을 크게 보지 않는다. 오로지 ‘로마에 전해질 복음’만이 관심사다.
우리에게도 잘못된 관심으로 치우쳐진 신앙이 아니라 참된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줄 믿는다. 그때 선물처럼 기적과 섭리를 풍성하게 보여주실 줄 믿는다. 은혜를 사모하며 묵상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