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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향유와 즉각적 순종 / 마가복음 14:1–1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붙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시간은 점점 유월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되기 때문에 명절에는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지 말자고 말하지만,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시간은 명절을 기점으로 할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소동’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로마 때문이다. 소동은 로마의 직접적인 개입을 허용하게 만들고 꽤나 끔찍한 대가를 치를 수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재정적인 것이든 로마가 허용하는 내에서 안전하게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제 살펴본것처럼 그런 ‘허용’은 곧 끝나게 될 일이었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철저히 파괴할 것이다. 그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는 이들은 겨우 ‘소동’을 걱정하지만, 사실 진짜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참된 성전을 경험하고 있는지여야 했다. 그들은 실패했다. 열매 없는 성전은 더욱 공포스러운 소동을 경험하게 만들것이다.
3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4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배경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다. 시몬이 나사로와 동일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금 이 향유를 붓고 있는 이야기도 마리아 인지 또 다른 인물인지 분명하지 않다. 심지어 마태와 마가는 ‘머리’에 붓는 것으로, 요한복음은 ‘발’에 붓는 것으로 다르다. 그래서 두 번의 사건을 기록한 것인지 의견이 갈라져있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각각의 본문에서 조금씩 다른 강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핵심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분노한 사람들’은 정확히 그 향유의 ‘돈으로 환산될 가치’에 집중했고, 여자를 나무랐다. 물론 여자의 전적으로 드리는 엄청난 가치의 나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백 데나리온은 거의 1년치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다. 따라서 이 금액적 가치를 따지면 사람들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성전에서 매매하던 사람들, 환전하던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다. 겉으로는 짐짓 경건한척하지만, 그 안의 ‘기능’이 고장나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죽으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셨고 그들이 들었음에도 기름붓는 행위와 예수님의 장례를 연결해서 생각하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시야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름의 기능은 사라지고 겉으로 보여질 구제와 경건한 ‘말하기’만 남은 것이다.
이 본문에서 보여주는 역설적 장치도 주목할만하다. 몇몇 사람이 ‘남자’ 였을 가능성, 특히나 ‘제자’였을 때 이야기는 매우 긴장감있는 대치를 보여준다. 예수님과 같은 지도자가 명절에 앞서서 ‘나병환자 였던’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부정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 자체가 문맥에서 매우 ‘아웃사이더’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핵심인물은 ‘여성’으로 또한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다. 그러나 곧 이 장면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는 역전된다.
6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7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직접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고 잘라 말하신다. 순전한 나드를 붓는 행위는 ‘예수님께’ 아름다운 일 이었다. 이 일은 시효가 짧다. 예수님께서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는 이런 엄청난 존중의 섬김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매우 긴급하고 시급성있는 행위였음을 생각할 때 아름다운 일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 드리는 행위는 매우 값진, 거의 전부의 것을 ‘즉시’ ‘곧바로’ 드려야 한다.
한편 예수님은 ‘즉시’, ‘곧바로’ 드려야하는 것과 다르게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음을 지적하신다. 두 가지는 서로 반대되거나 우선순위가 다른게 아니다. 다만 지금에 맞는 행동이 ‘기름을 붓는 것’이었고 기회가 지금밖에 없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 예고를 떠올리게 만드셨지만, 제자들이 제대로 파악했던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장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반응하는 사람은 이 여자 혼자인것처럼 느껴진다. 제자들과의 위치가 ‘역전’ 된 것이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명확하게 여인이 하려고 했던 행위의 의미를 밝히신다. 그것은 ‘장례’를 위함이었고, 이야기는 더욱 예수님의 죽음을 향하여 달려갈 것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한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해지고 여자를 기억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주 명확하게 ‘죽음’을 인지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 속에 있는 사람 중에 여인을 제외하고 누구도 예수님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데, 예수님께서 이 장면을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의심없이 향유의 목적이 성취되었으며, 확실한 죽음이 ‘확실한 부활’을 보증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10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서 기뻐하여, 그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오늘의 본문에서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배신할 마음을 꺼내놓는 것에서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은 삼백데나리온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장본인으로 등장한다. 만약 두 사건이 동일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아웃사이더가 되며 자신의 말을 예수님께서 질책하신 것에 대한 비뚤어진 마음이 배신으로 표출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그가 도둑이었고 계속해서 돈을 훔치는 자였기 때문에 ‘돈’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루트를 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배신의 합작은 완성되었다. 대제사장들은 내부의 반역자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유다는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이로써 예수님의 ‘긴급한 시간’이 더욱 빠르게 다가오게 되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준비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을 진심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오로지 ‘여인’ 밖에 없다. 그녀의 긴급하고 시급한 기름붓기만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유일한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얼마나 긴급하게 순종하는지 생각해본다. 은혜로운 유예 덕분에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좋을 순종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금 지금 당장 순종하는 즉각적인 순종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앞으로 나아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임을 믿는다. 이 즉각적 순종을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