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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잔혹한 폭력을 당하는 인간의 대표 / 욥 16:1-17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욥이 대답하였다.
2 그런 말은 전부터 많이 들었다. 나를 위로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너희는 하나같이 나를 괴롭힐 뿐이다.
3 너희는 이런 헛된 소리를 끝도 없이 계속할 테냐? 무엇에 홀려서, 그렇게 말끝마다 나를 괴롭히느냐?
4 너희가 내 처지가 되면,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너희에게 마구 말을 퍼부으며, 가엾다는 듯이 머리를 내저을 것이다.
5 내가 입을 열어 여러 가지 말로 너희를 격려하며, 입에 발린 말로 너희를 위로하였을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분명히 욥을 향해서 ‘지혜’의 말로 ‘위로’를 전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위로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표현들이 오히려 욥을 더욱 심하게 괴롭힐 뿐이었다. 욥은 이런 말들을 ‘헛된 소리’ 라고 말한다. 지금 욥과 친구들은 서로의 말들이 ‘헛된 소리’ 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가지 표현들로 ‘말’들의 의미없음을 서로가 폭로하는데, 결국 누구의 말이 진실한가를 다투는 진리 논쟁, ‘지혜’를 소유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 이 논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욥은 처한 상황의 다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역지사지가 되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욥도 친구들의 입장이 되었을 때는 말들을 퍼붓고 가엽게 여기는 행동등을 함으로써 위로가 아닌 ‘경멸’을 퍼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금 욥이 당하는 상황이 ‘경멸’받고 있다는 사실을 돌려 말함이기도 하다.
6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이 고통 줄어들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어 보아도 이 아픔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7 주님께서 나를 기진맥진하게 하시고, 내가 거느리고 있던 자식들을 죽이셨습니다.
8 주님께서 나를 체포하시고, 주님께서 내 적이 되셨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라고는,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모습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나를 치신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지은 죄로 내가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욥은 다시금 자신의 상황을 재진술한다. 하나님은 모든 기운이 사라지게 만드시고 자식들을 죽이셨다. 이어지는 8절의 진술은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욥을 향해 ‘적대적 행위’를 하고 계시다고 하소연한다. 지금 욥은 피골이 상접하여 하나님께서 치셨다는 것이 드러나 보이게 되었다. 욥은 분명히 하나님께 ‘치심’을 당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것이 ‘죄’의 결과는 아니다. 그런데 욥이 항변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욥이 ‘치심’을 당해 피골이 상접한 것이 ‘죄에 대한 대가’ 라고 생각한다.
아무 이유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치심’을 당해 해골처럼 변해가는 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죄로 인한 대가 라고 말하는 편이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욥은 그것이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아무 이유없이 당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다. 지금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과 ‘죄’가 연결될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 분명한것은 욥이 느끼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하나님이 자신을 ‘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욥기 마지막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욥의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지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욥은 선명하게 자신을 적대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있다.
9 주님께서 내게 분노하시고, 나를 미워하시며, 내게 이를 가시며, 내 원수가 되셔서, 살기 찬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시니,
10 사람들도 나를 경멸하는구나. 욕하며, 뺨을 치는구나. 모두 한패가 되어 내게 달려드는구나.
11 하나님이 나를 범법자에게 넘겨 버리시며, 나를 악한 자의 손아귀에 내맡기셨다.
12 나는 평안히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으스러뜨리셨다. 내 목덜미를 잡고 내던져서, 나를 부스러뜨리셨다. 그가 나를 세우고 과녁을 삼으시니,
13 그가 쏜 화살들이 사방에서 나에게 날아든다. 그가 사정없이 내 허리를 뚫으시고, 내 내장을 땅에 쏟아 내신다.
14 그가 나를 갈기갈기 찢고 또 찢으시려고 용사처럼 내게 달려드신다.
하나님께서 적이 되심으로써 하시는 ‘미워하시는 일들’의 결과가 쭉 설명된다. 분노하심, 미워하심, 이를 가심, 원수가 되심, 살기의 눈초리로 노려보심으로써 일어나는 것들은 ‘사람들’의 잔인한 반응들이다.
사람들은 경멸하고 욕하고 뺨을 치고 달려든다. 악한 자들의 손아귀에 내맡기신다. 하나님은 욥을 과녁처럼 삼으시고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들게 만드신다. 화살은 욥에게 꽂혀서 허리가 뚫리고 내장이 땅에 쏟아지며 찢고 또 찢어진다.
아주 잔인할 정도의 학대를 당하고 있노라고 욥은 목소리를 높인다. 욥의 설명들이 실재 사건들로 경험된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가 당하는 극심한 고통의 수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욥은 인간으로써 당하기 힘든 수치와 경멸과 극심한 고문과 폭력에 휩싸여있다. 이 모든 것은 죄없는 인간 욥에게 벌어지는 부당한 폭력이다.
15 내가 맨살에 베옷을 걸치고 통곡한다. 내 위세를 먼지 속에 묻고, 여기 이렇게 시궁창에 앉아 있다.
16 하도 울어서, 얼굴마저 핏빛이 되었고,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 있다.
17 그러나 나는 폭행을 저지른 일이 없으며, 내 기도는 언제나 진실하였다.
욥은 베옷을 걸치고 통곡하며 먼지와 시궁창 속에 앉아있다. 극심한 다크써클과 거무튀튀해진 얼굴은 그야말로 죽음이 임박한 인간의 모습처럼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폭력을 저지른 일도 없고 기도는 진실했다고 말하면서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이런 일을 당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욥의 억울한 하소연을 듣는다. 죄없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의 크기가 어마어마함을 보게 된다. 욥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죄없는 한 인간이 당하는 끔찍한 폭력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만 같다. 우리 주님은 악인들에게 체포되시고 사람들이 경멸하고 욕하고 뺨을 치고 모든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쳤다. 진짜 범법자처럼 로마 법정에 넘겨지셨고 악인들의 손에서 불공정한 심판이 이뤄졌다. 우리 주님은 손과 발이 못으로 뚫리셨고, 창으로 허리가 뚫리셨다. 그리고 물과 피가 쏟아지셨다. 그분의 얼굴은 맞아 일그러지셨고 죽음의 고통으로 하소연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욥의 죄없는 인간이 당하는 끔찍한 폭력의 묘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더 선명하게 ‘실재된 사건’으로 발견하게 된다. 죄없으신 분의 하나님과의 단절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잔혹한 먹잇감처럼 취급당하셨는지를 알고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죄악된 인류의 모습이다.
우리가 내일 계속 읽겠지만, 욥이 당하는 이 고통을 해소되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중보자가 고난당하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욥이 말하는 죄없는 인간의 끔찍한 고통을 ‘실재로 감당하신 중보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엑 엄청난 위로를 준다. 우리가 그런 최악의 외면당함과 경멸과 멸시를 당하고 끔찍한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아픔을 알고 계시고 경험하시고 깊이 공감해주실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은 죄없으신 분으로써 그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신다.
그러므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야말로 우리를 참되게 회복시키고 위로하시며 다시 소망을 갖게 만드시는 위대한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당한 아픔과 눈물과 슬픔에 대해서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호소하자. 그분은 우리를 아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기꺼이 우리의 아픔에 동참하신다. 그 참된 위로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욥의 고통의 묘사들은 매우 비참하고 억울한 상황을 보여준다.
2.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과 경멸을 당하는 모습이 예수님을 생각나게 만든다.
3.
그런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분이 우리의 중보자시다.
4.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억울함을 공감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