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무렵에 다시 큰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2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3 내가 그들을 굶은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장소가 특정되지 않고 있다. 이전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으로 본다면 갈릴리 동쪽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사건은 전통적인 이해에 따라서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은 사흘이 지났다 라고 되어 있어서 그 긴 시간 동안 치유와 말씀 선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여기에서 ‘먼 데서 온 사람’들은 아마도 데가볼리 지역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방인들이었을 그들은 사흘 동안 배고픔을 참으며 예수님의 치유와 가르침의 사역에 동참하고있다.
4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이 빈 들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일곱 개가 있습니다.”
6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빈들’이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이들에게 줄 빵을 장만할 수 없다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은 이미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반복된 경험들로도 부족하다. 이 부분에서 제자들은 꾸짖음을 당할만하다.
예수님은 빵이 몇개가 있냐고 질문하셨고 동일한 방식으로 기적은 사람들에게 경험된다. 비록 생생한 묘사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축사와 나누어줌은 성찬식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예수님의 식탁은 ‘더욱 풍성한 것’을 나누어주심이 기본이다.
7 또 그들에게는 작은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것을 축복하신 뒤에, 그것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8 그리하여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으며,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9 사람은 사천 명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헤쳐 보내셨다.
10 그리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작은 물고기에 대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부스러기를 모았는데 일곱 광주리에 모으게 되었다. 이야기는 오병이어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남은 부스러기의 양이 일곱 광주리로 소개되는데, ‘광주리’는 오병이어에서 사용되던 광주리와 원어의 사용이 다르다. 학자들은 이점에서 유대인들에게 벌어진 사건과 이방인들에게 벌어진 사건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사천명이고 예수님은 그들을 헤쳐보낸다. 이것도 오병이어 사건과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은 군중들을 통제하시며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왕이 되시길 거절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신다. 달마누다 지방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다. 아마도 예수님은 다시금 유대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갔다는데 마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와서는, 예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그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요구하였다.
12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님이 이방인지역에서 돌아오시자마자 바리새파 사람들을 만나신다. 그들은 예수님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예수님을 향해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달라고 요구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의 예는 엘리야의 요청처럼 불이 내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만나’를 싫어해서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리게 해달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탄식하신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치유하실 때 탄식하셨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격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이 세대에 바리새인들과 반대자들, 무리들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헤쳐보내실 때 그들의 ‘기대’가 깨졌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왕이 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표징은 결코 주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신다. 우리가 마가복음 처음부터 봐온것처럼 예수님은 항상 떠나신다. 이제 예수님은 군중들을 떠나서 건너편으로 가셔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힘을 쏟으실 것이다.
기적은 일종의 패턴이 있는 것처럼 반복되고 있지만,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 기적의 이유와 목적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시는 이유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력과 폭력으로 정복하는 나라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언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더욱 궁극적인 창조 목적이 회복되는 나라다.
우리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어떠한 것인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가 세상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창조의 원리가 회복되길 원하는 것인가 질문해보아야 한다. 창조하신대로, 보시기 좋으셨던 모습 그대로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라고 소망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