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 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로 왔다. 이것은 이들이 갈릴리로 파견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이전의 본문에서 예수님의 기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오병이어의 사건에서는 대규모 반란 세력의 느낌까지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무리에 대한 감사를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더욱 반대자의 입장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자들에대한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흠집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었다.
그들이 빌미로 잡은 것은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고 계시다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명시적으로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는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에 관련된 문제였다. 물론 위생상의 이유로 손을 씻는 것은 당연히 이뤄지면 좋을 행동인 것은 맞다. 또한 예식적 정결 목적으로 손을 씻는 것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이뤄지는 것이기는 했어도 그런 모범을 따라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 음식을 먹는 상황과 제사장이 아닌 백성들에게까지 ‘원리’를 확장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어떠한 유형인지를 알게 만든다. 그들은 ‘전통’이라는 틀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이 ‘틀’ 안에서만 행동하도록 제약하고 구속한다. 그들은 그것이 ‘정결’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하겠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결은 ‘형태나 틀’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예수님은 이들의 특별한 전통을 증명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본질적인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실 것이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예수님은 이사야 29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신다. 아직 그들이 왜 위선자인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삶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신다.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입술로는 공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라고 지적하시면서 율법과 전통을 원리주의적으로 적용하면서도 율법이 만들어지게 된 본질적인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식을 꼬집으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리는 배제한체 사람들이 만들어낸 원리로 변질시켜버렸다.
예수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고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시거나 무시하시려는게 본래 목적이 아니시다. 오히려 율법의 본질에 입각해 완성시키길 원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 원칙과 원리, 본질을 오염시키고 사람의 전통으로 바꾸어 주어 섬기는 행위로 율법을 폐지하고 있는 것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다.
9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폐지시키고있는지 예시를 드신다. 그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에 관련된 내용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약속으로 이어진 한 가족으로 맺어진 책무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그 약속을 전달하고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만들며, 자녀들은 그 말씀에 복종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를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써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다만 생물학적인 부모와 자녀로써의 생명 수여자 기능만 생각하더라도 효도는 당연하지만, 언약 관계 안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욕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했다.
한편 ‘고르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인 것은 맞다. 고르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예물로써 드리면 이것은 ‘서약’으로 구분되어서 결코 무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결정된 ‘고르반’은 그것이 좋은 의도인지 나쁜 의도인지 상관없이 한번 선언되면 함부로 처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을 ‘면제’ 할 수 있도록 허락할 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서기관의 법정에서 심리되었고, 서기관들은 그 서약에서 놓아주기를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고르반’이 원래의 의도,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은혜에 대한 반응을 율법학자들의 배를 불리는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전통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을 완전히 일그러뜨려놓는 예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손을 씻는 전통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말씀하시기 보다 더욱 큰 관점에서 전통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무리한 전통의 강요가 율법조차 어그러뜨릴 수 있음을 말씀하셨고 그들의 경건한것 같으면서도 탐욕스러운 이중적인 잣대를 고발하셨다.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지켜지는 본질적 규칙이다.
우리는 그 사랑의 본질을 가지고 우리의 경건을 세워가는가, 아니면 ‘원리주의’적인 원칙만을 고수하는가? 진리는 본질을 가지고 있어 흔들리지 않지만,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원리주의는 딱딱하게 굳어있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결국 유연하지 못함으로 깨지고 부러져버린다. 우리의 삶의 체계가 주님이 원하시는 본질에서 흔들리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원리로 세워져가길 바라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