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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0:1-15

우리는 천년왕국의 환상이 교회 역사 전반에 걸친 이야기라고 읽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 본문이 보여주는 최후의 전쟁보다 앞선 시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고 보아야한다. 또한 그랬을 때 이야기는 ‘반복’, ‘중첩’되면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잇을 것이다. 천사는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모든 권세를 획득하셨고, 사망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점을 이미 살펴보았다. 용, 옛 뱀, 곧 마귀 사탄은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 넣어지고 천년이 차도록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용을 추종하는 사악한 모방자들이 난립할 것이다. 그들은 국가적 권세와 경제력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고 어떻게든 무너뜨리려할 것이다. 그들의 모방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듯, 자신들도 그러하리라고 떠든다.
첫째 부활은 신자들에게 허락되는 놀라운 은혜다. 죽음조차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이 확인된다. 이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 그러나 이 죽음과 ‘첫째 부활’은 교회 시대가 여전히 박해와 어려움 가운데 있으리라는 앞선 계시록의 이야기와도 잘 연결된다. 첫째 부활을 ‘육체적인 부활’로 곧바로 연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둘째 사망, 또 다른 부활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부활을 ‘영적인 부활’로 여길 성경의 다른 본문들을 참고해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믿음 안에서 ‘부활’을 미리 맛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이미 ‘첫째 부활’을 경험한 이들이다. 이들이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 때, 부활의 능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영적인 부활이라면 본문의 어려움은 상당수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시적 교회, 전투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여러가지 어려움과 박해와 심지어 순교를 당하며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세속사회에 ‘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승리하는 비가시적교회에 편입되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온 세계의 왕이시다.
이 장면은 마지막 전쟁을 묘사하는 19장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최후의 전쟁을 묘사하는 다른 장면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곡과 마곡의 전쟁은 에스겔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서는 더 자세하고 세밀한 전쟁의 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파멸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잇을 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 ‘마귀’ 곧 ‘용’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으로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이 사악한 삼위일체의 모방자들은 마땅한 심판을 당해 파괴됨을 볼 수 있다. 이들의 괴로움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님의 정의와 공의로우심에 따른 결과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주님의 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박해했다.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둘째 사망’이 설명된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부활’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땅, 하늘, 바다- 즉 모든 우주 속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 생명책에 누가 씌여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다만 ‘천년 왕국’ 속에서 다스림을 미리 경험한, 첫째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둘재 사망을 경험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참된 회심과 가시적 교회에서 어떠한 타협 없이 몸부림치며 믿음을 지킨 자들은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