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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1-8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본다. 이제 ‘옛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전환됨을 보게 될 것이다. 옛 세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데, 바다가 있지 않다는 설명이 주목할만하다. 계속 지적했던 것처럼 ‘바다’는 [악의 서식처]였다. 그러나 이제 ‘바다’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악의 서식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등장한다. 새 예루살렘과 신부가 연결되는데, 이전 장면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준비되었다는 것과 연결해볼 때, 교회가 곧 새 예루살렘임을 알 수 있다. 이전의 예루살렘이 거룩한 시온,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장소로 여겨졌다. 새롭게 갱신된 새 예루살렘은 승리한 언약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임과 동시에, ‘임마누엘’ 주님께서 거하시는 곳으로 여겨진다. 이제 새 예루살렘은 ‘옛’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단장된 상태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성전이 곧 어린양 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장막은 우리 주님께서 ‘임마누엘’, 언제나 그 백성과 함께 하시리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모든 언약의 사항들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눈물을 눈에서 닦아 주시고,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요한은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 라고 말하면서 이 상태가 ‘새로운 상태’임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이전의 상태가 지나고 새로운 상태가 되었을 때, 본질적으로 변화된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상태가 사라지고 오직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성장’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성장’ 해야 했던 것과 다르게 새 예루살렘은 모든 것이 성취되고 완성된 공간이다.
모든 것이 성취되고 완성된 공간으로서 단지 ‘교회’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이 새롭게] 된다. 모든 우주가 완성된 질서 속에서 최초의 목적이 완성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것을 누리시고 완성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완성된 주님의 나라가 ‘에덴’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으로 되돌아가 완성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줄 것을 약속하신다. 이기는 자들은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고 ‘양자 입양’공식이 완성됨을 발견한다. 이것은 ‘왕권’을 가지는 것과 같은데,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언약 백성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아담과 하와’의 최초 역할을 새롭게 갱신하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급부에서 이 놀라운 새창조의 사건을 두려워하고 믿지 않는 자들, 십계명에 대한 명백한 불순종자들과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은 ‘둘째 사망’으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둘째 사망의 조건이 선하고 사랑으로 가득찬 하나님에 대해서 비판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전 본문에서 이 끔찍한 재앙의 원인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들은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처사가 ‘과하지 않은가?’ 라고 질문하기도한다. 우리는 바울의 말처럼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말대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불과 유황에 타는 못에 던져지는 존재들도 결코 죽지 않을 부활을 경험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나타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만하다. 영원한 고통과 소멸이라는 주제는 신학자들간의 논쟁의 요소가 되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