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찔렸다. 찔리다라는 표현은 아주 깊고 날카롭게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보좌 우편에 앉게 만드신 분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였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를 벌인 것이다. 그 사건이 벌어진지 불과 50일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생생히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한다.
베드로는 ‘회개’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회개’가 죄 용서와 성령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다는 점을 지적해볼 수 있다. 회개는 계속 지적되는 것처럼 말씀의 성취자이신 예수님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대한 뉘우침으로 시작해 예수님에 대한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생각을 바꾸어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아, 부활하고 영광받으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를 시작한 분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으로 받는 은혜는 세례 곧 ‘씻김’과 죽음에서 부활을 미리 맛봄과 성령의 임재를 통해 계속해서 주님의 주인되심 속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음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요엘에 예언되었던 것처럼 어떤 제한 없이 제공되는 것이다. 오직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베드로는 듣고있는 사람들에게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받으라고 열심으로 권면한다. 비뚤어진 세대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렸던 명칭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출애굽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우상숭배와 반역을 반복했다.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 새로운 다윗으로 참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반대해서 십자가에 못박는 처참한 반역을 저지른 것이다. 요엘 2장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두려운 사건들이 시내산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지적햇었는데, 그렇다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조상들의 선택을 반복할 것인지, 회개하고 돌이켜 순종의 길에 설 것인지. 그 날 신도의 수,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의 수가 삼천이 늘었다고 보고한다.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때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을 정리할 수 있는데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함과 서로 사귀고 빵을 떼는 일, 기도에 힘썼다 라는 표현이 42절과 46절에 나온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의 초창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 몰두 했으며 성찬과 기도에 힘쓰고 동참하는 것이 ‘기본’ 이었다. 이 기본 위에 놀라운 표징들이 일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 경외심이 생겼다.
이 회심한 집단인 교회를 통하여 일어나게 된 것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필요를 서로에게 채워주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핵심은 모든 것을 ‘공동소유’하는 방식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몇 가지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적은 수입을 가졌으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는데, 그때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포기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즉,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보여주는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향해 하나님의 관심이 쏟아진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율법’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자유롭게, 그러나 더욱 진취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결국 이 일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살 수밖에 없었고,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본질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예수님의 참된 주인되심을 온전히 이해하고, 배우고,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이 초대 교회의 핵심이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할 줄 믿는다. 우리의 시대는 분명 ‘비뚤어진 세대’와 같다. 수만가지의 우상숭배 대상들을 섬기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말씀이 선포되지만, 그 말씀을 온전히 받고 반응하며 순종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 질문하게 된다. 반대로 말해서 이 비뚤어진 세대에 우리가 할 일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서 말씀과 기도로,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낼 실력으로 키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참된 ‘두려움’, ‘경외’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구원받는 자들을 더하실 것이다. 우리의 편에서 지금 해야 할일은 비뚤어진 세대에서 ‘회개’ 하는 것이다. 참된 회개를 통과해 말씀이 선언되고 성취되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큰 일이 우리 안에 경험되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