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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부흥하는 교회 / 사도행전 6:1–1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었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3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교회의 성장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한 마음’이 된 성령님의 충만함을 통해서 복음 선포에 어떤 박해에도 힘을 내었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물질을 서로 통용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예루살렘에는 두 유대인들이 존재했다고 보이는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과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사람이다. 여기에서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은 포로 후 전세계로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단지 ‘언어’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고의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문화적으로 이해가 달라 생기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 때문에 ‘소홀히 여김’을 받았다.
사도들은 교회의 핵심적인 직무가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구제’는 하나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되심과 그 통치의 ‘결과’ 생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이 사랑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고백하도록, 그것으로 공동체가 건강히 세워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다. 그래야 이후의 구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불균형’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영적인 차원의 관심만 깊이 있는 인물이거나 계산만 빠른 이성적인 사람이기만 한다거나 해서는 안된다. 이 둘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원래도 따로 분리가 불가능하다. 참된 회심은 ‘전인격’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5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일곱 집사가 뽑힌다. 일곱 사람은 모두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된다. 아마도 그리스 과부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제 활동이 집사 선출의 이유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왜 일곱을 뽑았는지는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조력자들을 통해서 집중된 일이 분산됨으로써 더욱 집중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특별히 ‘스데반’이 이후의 등장할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수식어 또한 남다르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우리는 바로 뒤에서 스데반이 은혜와 능력의 충만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뛰어난 실력으로 설교할 수 있었으며, 구주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있는 탁월한 영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말씀과 기도 위에서 탁월한 실력과 영성을 가진 지도자들로 인해 부흥할수밖에 없는 공동체 였음을 볼 수 있다.
8 스데반은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9 그 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에서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본문은 스데반이 ‘은혜와 능력’이 충만함으로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려고 하지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기 때문에 당해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전의 본문에서 함께 살펴본 것처럼 말과 예언은 현실과 성취로써 증명된다. 거짓은 결코 증명불가능하다. 오직 참된 진리가 증명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스데반은 ‘놀라운 일들과 큰 기적’을 통해서 그의 말이 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하고자 하는 반대자들은 스데반의 강력한 논증과 증명되는 사건들을 압도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제 스데반을 통해서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논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었다. 모든 것은 약속의 성취로 이뤄진 일들이었다.
11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부추기고, 스데반에게로 몰려가 그를 붙잡아서, 공의회로 끌고 왔다.
13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쉴새 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을 합니다.
14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15 공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
논쟁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을 선동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말’하게 만든다. 우리는 예수님도 동일한 모함을 받으셨던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스데반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복음은 율법의 ‘폐지’가 아닌 ‘완성’을 말하는 것임에도 그들은 율법의 폐지를 말하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들은 ‘거룩한 곳’ 성전을 헐어버리고 무너뜨리리라는 말에 분개하지만, 참되신 성전이신 예수님을 ‘죽인 것’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참된 진실에 대해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회심도 없다.
이제 스데반의 긴 설교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스데반 설교의 핵심은 율법의 ‘완성’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분의 살아계심과 통치가 지금도 이곳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은 스데반을 향해 분노할 것이다. 그럼에도 참된 진리를 선언하는 스데반의 얼굴은 결코 어두워지지 않고 밝게 빛난다.
우리가 복음과 그 진리에 온전히 헌신하고 그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여 흔들리지 않는 진리 위에 설 때, 교회는 부흥하게 될 줄 믿는다. 초대교회 구성원 하나 하나가 그 진리 위에 섰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 집사 중에 한 사람 니골라는 후에 초대교회 유명한 이단의 창시자가 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니골라당을 만든 인물이라고 초대교회 기록은 말해준다. 여전히 실패하고 오류로 가득차있으며 연약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진리에 온전히 복종하는 자들에게 그 은혜로우신 능력으로 부흥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수와 실패에도, 그 연약함을 채우시는 주님께 온전히 복종하며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붙들고 사수하기를 결단하자. 우리에게도 여전히 부흥을 허락하실 줄 믿는다. 그 믿음 가지고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