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이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내 귀로 다 들어서 안다.
2 너희가 아는 것만큼은 나도 알고 있으니,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것이 없다.
3 그러나 나는 전능하신 분께 말씀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다.
4 너희는 무식을 거짓말로 때우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모두가 돌팔이 의사나 다름없다.
5 입이라도 좀 다물고 있으면, 너희의 무식이 탄로 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본문에 이어서 욥은 자연 만물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경험적’으로 이뤄졌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보고 듣는 지혜의 습득과정이 충분히 논증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욥은 친구들을 향해서 그들이 이 경험적으로 습득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무식한 자들’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의 말들을 변호한다. 이 지혜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평가 받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욥의 소원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 마음을 완전히 쏟아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 본문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에 인간은 철저히 죄인일수밖에 없기에 참된 지혜, 하나님과의 대화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하다.
6 너희는 내 항변도 좀 들어 보아라. 내가 내 사정을 호소하는 동안 귀를 좀 기울여 주어라.
7 너희는 왜 허튼 소리를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을 빌미삼아 알맹이도 없는 말을 하느냐?
8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할 셈이냐?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논쟁을 할 셈이냐?
9 하나님이 너희를 자세히 조사하셔도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이듯, 그렇게 그분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10 거짓말로 나를 고발하면, 그분께서 너희의 속마음을 여지없이 폭로하실 것이다.
11 그분의 존엄하심이 너희에게 두려움이 될 것이며, 그분에 대한 두려움이 너희를 사로잡을 것이다.
욥은 친구들이 하는 말들이 명목상으로는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을 대변하려고 한다는 것을 간파한다. 하지만, 그들이 파악한 진리는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욥의 관찰의 결과는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한다. 욥의 친구들은 한낱 인간일 뿐이기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는척 해봐야 어리석음이 드러날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어리석음과 거짓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욥은 하나님의 존엄하심 앞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두려움이 증폭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진실을 가지고 있고 진리를 수호하는 입장에 섰다고 확신할지라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가면 한계를 가진 인간의 죄악이 낱낱이 드러날수밖에 없다.
욥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변호하려는 친구들의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적한다. 친구들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변호해야하는 위험에 처하게 될 뿐이다.
12 너희의 격언은 한낱 쓸모 없는 잡담일 뿐이고, 너희의 논쟁은 흙벽에 써 놓은 답변에 불과하다.
13 이제는 좀 입을 다물고, 내가 말할 기회를 좀 주어라. 결과가 어찌 되든지, 그것은 내가 책임 지겠다.
14 나라고 해서 어찌 이를 악물고서라도 내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겠느냐?
15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16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는 구원을 얻는 길이 될 것이다. 사악한 자는 그분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욥은 친구들의 말들이 쓸모없는 잡담, 흙벽에 써 놓은 낙서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욥은 자신의 말들을 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그 말의 결과 책임은 욥이 질 것이다.
지금 욥은 매우 두렵지만 덜덜 떨면서도 하나님 앞으로 사정을 말하기 위해 나아가려고 한다. 자신도 이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안다. 인간의 아무리 완전함도 하나님의 완전함에 미칠 수 없고 하나님의 때리시는 심판 앞에서 철저히 무력한 인간일 뿐이기에 욥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점점더 커질 뿐이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죽이려하셔도 기꺼이 당하려고 한다. 기꺼운 죽음은 오로지 욥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자신의 상황을 소상히 아뢰는 것이다. 확실하게 욥은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가 심판과 징벌의 보좌라고 인식하는것 같다.
17 너희는 이제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18 나를 좀 보아라, 나는 이제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는, 내가 죄가 없다는 확신이 있다.
19 하나님, 나를 고발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죽을 각오를 하고 있겠습니다.
욥은 준비가 되었다. 하나님을 향해 논쟁을 벌일 준비가 되었다. 자신은 죄가 없노라고, 지금의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시라고 외칠 준비가 되었다. 하나님의 고발장이 날아든다면 기꺼이 받아들겠다고 말한다. 그 고발장의 정죄로 말미암아 죽을 각오가 되었다. 다만 욥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억울함을 토로하고 들어주시고 반응해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욥은 ‘유기’ 당하느니 차라리 ‘유죄’를 선고받길 바란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그분의 완전무결하심 앞에서 우리의 더러움과 추악함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고발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보자 되신 우리 주님이 계시지 않는 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어떤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욥이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바로 그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으며 모든 정죄를 대신 당하심으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힘을 얻게 만드셨다. 이 놀라운 선언과 선물이 우리에게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스스로 유기 당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는 놀라우신 은혜를 깊이 경험하길 바라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으로 다가갈 수록 인간은 더욱 위험하다.
2.
죽기를 각오한 욥의 호소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길 청원하는 간절함이다.
3.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심판의 보좌가 아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