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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첫사랑을 가진 목자 / 사도행전 20:28–38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첫사랑을 가진 목자 / 사도행전 20:28–38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28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 떼를 마구 해하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하신 목자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그들도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게 된다. 목자는 먼저 ‘자신’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채 양 떼를 향해 달려오는 사나운 이리떼를 물리칠 수 없다. 우리는 현대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정신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을 놓치고 내외부적으로 돌진해오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목자의 기본은 자신을 엄격하게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양 떼를 잘 보살펴야 한다. 양 떼를 잘 보살펴야 하는 이유는 성령께서 그 양들을 책임질 감독으로 세우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 양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의 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양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가 받을 심판은 누구보다 무거울 것이다.
바울이 교회에 대해 염려하는 부분은 사나운 이리떼가 양 떼를 해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다른 복음’에 해당하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심각한 박해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교회 내외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가오는 모든 문제들에 앞장서서 양 떼를 보호하라는 주문으로 읽을 수 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이탈시켜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 있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본문에서 어떤 종류의 이단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후에 에베소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분명히 에베소 교회 안에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 위하여 매우 엄격한 잣대를 대어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께 칭찬받은 점은 악한 자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고,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부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고난을 견디고 낙심하지 않음으로 외부적인 박해도 잘 견뎌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으로 책망받는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삼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주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은 한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훈계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사랑없는 판단가름이 오고갔음을 알 수 있다. 그로인한 문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복음, 그 구원의 내용을 빠짐없이 눈물의 수고로 가르친 바울의 복음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고 또 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잃어버린 사랑은 이 복음을 듣지도, 전하지도 않은 상태다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권면에 따라 그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듣고 또 전해야 한다.
32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결국 교회가 바로 서는 것은 하나님과 은혜로운 말씀에 의해 세워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바울은 스스로가 교회 공동체를 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께서 세워가시는 교회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바울은 떠나지만,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 의해 교회는 단단히 세워질 것을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 여전히 장로들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말씀으로 튼튼히 교회를 세워가야 하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이 유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할 책무를 갖는다.
바울은 마지막의 권면을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연보를 가져가는 일에 대한 오해를 정리하고 목자로써의 태도를 상기시킨다. 바울은 스스로 천막 만드는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역의 기반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물질에 전혀 매이지 않고 사역함으로써 모범을 보였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연보는 오직 교회의 연합과 하나됨을 위한 사역이지 바울에게 이윤을 남기기 위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고대 당시에 ‘선생’ 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수성을 생각할 때, ‘가르침’은 분명히 이윤을 남길만한 특수한 직업이었고, 가르침의 대가를 받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이 복음을 ‘가르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하더라도 고대의 인식에 따르면 그리 이상할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바울은 철저히 그런 일을 스스로 금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에게 제공하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장로들은 이 지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36 바울은 말을 마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의 눈물의 이별 장면을 보게 된다. 이제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실컷 울고,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마치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듯한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반드시 죽으실 것을 예고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오늘 바울은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예고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헤어질 것이지만, ‘부활’이 있다. 그때까지 각자 맡겨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 눈물의 헤어짐이지만, 다시 만날 날까지 자신의 남은 평생, 그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며, 주님이 주신 목자로써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남겨진 책임이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첫 사랑’이 남아 있는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 사랑의 메시지를 들고 전할 때 우리에게 닥쳐올 내부적인, 외부적인 위기들도 극복할 수 있을 줄 믿는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본을 보여주셨고, 바울이 그 본을 따라간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사랑의 길을 다시금 선택하고 따라가기를 다짐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