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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의심스러운 영성가 / 욥기 32:1–2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욥이 끝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므로, 이 세 사람은 욥을 설득하려고 하던 노력을 그만두었다.
2 욥이 이렇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돌리므로, 옆에 서서 듣기만 하던 엘리후라는 사람은, 듣다 못하여 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엘리후는 람 족속에 속하는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다.
3 엘리후는 또 욥의 세 친구에게도 화를 냈다. 그 세 친구는 욥을 정죄하려고만 했지, 욥이 하는 말에 변변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4 그들 가운데서 엘리후가 가장 젊은 사람이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
5 그런데 그 세 사람이 모두 욥에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화가 났다.
엘리후의 발언에 대해서는 매우 극단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엘리후의 발언 직후 하나님의 발언이 이어지고 엘리후의 발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엘리후의 발언 자체가 이전에 논의되었던 것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새로울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평가 자체를 할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가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면 32장에서 37장까지 긴 본문을 할애하여 그의 발언을 담은 것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엘리후의 발언에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트렘퍼 롱맨 3세에 의하면 엘리후가 독특한 것은 주장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주장의 근거 때문인데, 그것은 ‘영적’인 것으로써 자신을 ‘중재자’ 역할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후는 ‘거짓 중재자’를 자처하는 인물이 되고 만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위협이다. 엘리후가 거짓 영성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을 유의하면서 엘리후의 발언을 살펴볼 것이다.
엘리후는 욥이 자기가 올핟고 주장하는 것, 하나님께 잘못을 돌리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또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세 사람에게 분노한다. 이제 엘리후는 이 무도한 자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하며 가르침을 시작한다.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말하였다. 나는 어리고, 세 분께서는 이미 연로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께 선뜻 나서서 내 견해를 밝히기를 망설였습니다.
7 나는 듣기만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래 사신 분들은 살아오신 것만큼 지혜도 쌓으셨으니까, 세 분들께서만 말씀하시도록 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8 그러나 깨닫고 보니, 사람에게 슬기를 주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영 곧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9 사람은 나이가 많아진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며,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시비를 더 잘 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0 그래서 나도,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세 친구들은 전통과 나이가 많은, 오래된 지혜에 근거를 두고 발언을 해왔었다는 것을 살펴봤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이 연로한 것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엘리후는 갑자기 발언을 시작한 이유가, ‘슬기를 주는 것’은 인간의 경험적 지혜, 나이가 많아 오래된 지혜가 진짜가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있을 때 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자신이 하나님의 입김을 얻은 지혜, 신령하고 영적인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엘리후의 발언의 근거가 어떤 종류의 ‘영성’을 근거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1 세 분이 말씀하시는 동안에, 나는 참으며 듣기만 하였습니다. 세 분이 지혜로운 말씀을 찾으시는 동안에, 나는 줄곧 기다렸습니다.
12 나는 세 분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 분께서는 어느 한 분도, 욥 어른의 말을 반증하거나 어른의 말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셨습니다.
13 그러고서도 어떻게 지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실 수 있으십니까? 세 분께서 이 일에 실패하셨으니, 내가 이제 욥 어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시도록 하겠습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이 욥의 말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실패’ 했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이 실패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심과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한 것이다. 이들의 실패는 오래된 인간적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후는 그들의 인간적 답변 대신에 욥에게 ‘하나님의 대답’을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엘리후가 이전 세친구들과 비슷한 내용이면서 전혀 다른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근거다.
14 욥 어른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니므로, 나는 세 분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욥 어른께 대답하겠습니다.
15 욥 어른께서는 들으십시오. 세 분 친구가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어른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16 그런데도 내가 그들이 입을 다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이제 그들은 할 말도 없으면서, 그냥 서 있기만 합니다.
세 친구들의 지혜가 부족했다는 것을 지적한 엘리후는 욥을 향해서 발언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발언의 시작이 세 친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시작한다. 계속된 발언에 끝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엘리후는 참을 수 없는 분을 떨치고 일어나 정의로운 대변자가 되기로 자처하며 욥을 향해서 발언을 시작하고 있다. 이로써 엘리후는 철저히 욥과 세 친구 사이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자신을 배치시켰다.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정답을 말할차례라고 주장한다.
17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8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말을 참을 수도 없습니다.
19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새 술이 가득 담긴 포도주 부대가 터지듯이, 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20 참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21 이 논쟁에서 어느 누구 편을 들 생각은 없습니다. 또 누구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할 생각도 없습니다.
22 본래 나는 아첨할 줄도 모르지만, 나를 지으신 분이 지체하지 않고 나를 데려가실까 두려워서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17-22절의 긴 절에서 어느 말 하나라도 ‘핵심’이 될만한 중심 문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그저 ‘길게 말꼬리를 이어붙이는 말’일 뿐이다. 말 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새 술이 담긴 포도주 부대가 터져버리듯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말한다. 말 잔치가 과연 중심을 꿰뚫을 수 있으며 진중하고 쉼없이 때리는 망치질 같을 것인지, 실속없이 허공만 때리는 주먹질일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언이 힘이 있기 위해서는 그가 말했던 ‘하나님의 대답’을 선명하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엘리후라는 인물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답변을 보게 된다. 이 새로운 시도는 ‘영적인 도약’ 이라 부를만하다. 이 영적인 도약을 통해서 엘리후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중보자, 중재자는 한계성을 가진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제 아무리 신령한 지식과 영적인 감각을 지녔다 할지라도 인간의 오염된 상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엘리후의 답변이 정말 영적인 답변이라면 말 잔치를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핵심만 짚을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어쩌면 탁월함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측면에서 엘리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떠벌리기 좋아하는’ 영적 스승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말을 하고 싶어서 가슴이 타는 엘리후보다 말 하고 싶지 않은데 가슴이 타서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었던 예레미야는 너무나 다른 결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에게는 처절한 ‘삶’이 동반했고, 말은 증명되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눈물은 지금도 뜨거운 용광로같은 영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을 포장하는 엘리후의 말은 누구도 ‘영성의 대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도 ‘영적 구루’를 자처하며 ‘말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는가? 그러나 진짜는 ‘삶’으로 증명되는 말이다. 우리를 중재하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우리 주님밖에 안계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영성과 삶의 지혜에 대해서 철저히 ‘겸손’ 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말에 진정한 겸손과 삶의 열매가 맺히길 바라며 거짓 영성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 주시길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엘리후가 발언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답변’이다.
2.
엘리후는 그 근거로 욥과 친구들 사이,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되려 한다.
3.
그러나 엘리후의 답변들은 정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4.
거짓된 영성은 교만과 허상으로 만들어진 말 잔치들 뿐
5.
진짜 중재자는 예수님 밖에 없으시다. 우리의 진리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