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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아쉬운 시작 / 열왕기하 9:1-13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언자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 손에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가거라.
2 거기에 가면, 그 곳에서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불러내어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거라.
3 그리고 기름병을 기울여 그의 머리에 부으며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하고 말하여라.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엘리야에게 말씀하셧던 명령은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 중의 한 사람을 시켜서 수행된다. 수련생 중의 하나는 허리를 묶고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예후’를 만나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여기에서 ‘기름병’은 ‘사울’에게 기름부엇던 방식과 같다. 원칙적으로 왕에게 붓는 기름은 ‘뿔’에 채워 부어져야 한다. 양 또는 염소의 ‘뿔’에 채워진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목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병’에 채워진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인정은 확인되나 그 끝이 의미심장하게 맺어지리라는 불길함을 가져온다. 예후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개혁을 시작하지만, 그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예후를 향해서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이라고 소개한다. 몇번의 예후를 소개하는 말이 님시의 아들, 여호사밧의 아들 이렇게 표현되며 나오게 될 텐데, 그만큼 그가 정통성있는 왕으로 인정받으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강력한 반증이 되기도 한다.
4 그리하여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
5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 시종이 말하였다. “바로 장군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종은 길르앗 라못으로 간다. 그곳에서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은 불리한 전쟁의 양상이 이어지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전 본문에서 시리아 왕 하사엘에게 요람이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따라서 왕이 전장을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이기 때문에 심각한 비밀 작전회의가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언자의 시종은 그곳에 어떻게 들어갔는가? 또 그중에 누가 예후인지 곧바로 알아보았을까?
이야기는 이러한 사항들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신비한 방법으로 들어갔고, 예후를 지목했고, 대화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후의 장군들의 반응이 이 사람을 ‘미친자’ 라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6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7 너는 네가 섬기는 상전 아합의 가문을 쳐라. 나는 내 종들인 예언자들의 피와 또 주님의 다른 종들의 모든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려고 한다.
8 나는 아합의 가문을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렇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은 매인 사람이건 놓인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남자는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
9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과 같이 만들 것이다.
10 그리고 개들이 이스르엘 땅 안에서 이세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를 매장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예언자의 시종은 기름을 부으며 엘리사가 전하도록한 말을 그대로 전한다. 하지만 그대로만 전한게 아니라 아합 가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보응의 범위를 예언한다. 아합 가문은 모두다 멸망당할 것이다. 아합 가문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바아사의 가문처럼 만들겠다고 하신다. 이 두 가문이 ‘배신’에 의해서 왕조가 끝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합 가문이 ‘배신’으로 종말지어지리라는 예고일 수 있다. 또한 이세벨에 대한 끔직한 예언도 이어진다.
이것은 예언자의 시종이 전하라는 말을 넘어 자신의 감정을 담은 말들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완전히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분명하다.
11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데로 나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였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가 대답하였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
13 그러자 그들은 황급히 일어나, 각자 자기의 옷을 벗어서, 섬돌 위 예후의 발 아래에 깔고,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예후는 신하들이 있는데로 나온다. 다른 장군 한 사람이 ‘좋은 소식’이냐고 질문한다. 그들에게 지금 ‘좋은 소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 사람은 ‘미친사람’이라고 불린다. 다짜고짜 찾아와 한 사람을 지목하고 둘이서만 독대하려는 것은 전시작전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예후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네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 ‘짐작’에는 예후의 머리가 기름으로 젖어있는 것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이 ‘기름’이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기름은 ‘좋은’소식이길 바라지만, ‘미친 소식’일 수도 있다. 전쟁과 배신, 배반의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후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어 세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장군들은 나팔을 불며 ‘예후가 왕이 되었다’고 외친다.
예후의 시작은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기름부음’과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적 도구로써 이뤄진다. 따라서 하나님께 사용받는 도구로써 기름부어졌다.
그러나 이 기름부어짐이 얼마나 한계있는 기름부음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병’에 기름부음 받았고, 은연중에 왕이 되는 ‘반역’을 숨기려고 했다. 그는 결국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돌이킴과 회심으로 왕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 앗시리아의 기록은 예후를 여전히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부름으로써 전임 왕조의 후광을 쉽게 벗어날수도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름부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기름부음 받은 대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과정이 살아내어 지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위대한 시작이었지만, 아쉬운 시작이었다. 그럴지라도 ‘과정’과 ‘결과’에서 다를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회심의 사건이 성령의 ‘기름부음’받은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성령께서 기름부으셨음에도 여전히 한계있는 우리의 삶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기름부어주심 너머에서 우리의 삶의 과정과 결과가 다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자. 오로지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모든 과정과 결과에서 하나님의 영광 드러나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