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반역하였다.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래서 그는 사절단을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자기의 병이 나을 수 있을지를 물어 보게 하였다.
열왕기하는 아합이 죽은 뒤라는 이야기라고 시작된다. 기대되는 이야기는 아합의 우상숭배가 그치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데로 되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상 마지막부터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이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고 말한다.
아합의 죽음 후에 강력했던 아합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모압이 반역했다는 보고로 열왕기하는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정치적인 문제로만 읽혀질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본문들에 의해서 다윗의 왕조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복종할 때 그 영향력을 주변 국가로 확장하는 것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땅’의 신학에 따라 모압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떠났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아하시야는 적극적인 우상숭배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더욱 확정짓는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은 파리 군주라는 뜻이다. 아마도 바알세불을 의도적으로 바슷한 발음의 바알세붑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신의 능력과 힘이 파리 수준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병 나음을 파리처럼 아무 힘도 없는 신에게 의존하려고 하고 있다.
3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디셉 사람 엘리야를 보고, 사마리아 왕의 사절단을 만나서 이렇게 전하라고 명령하였다.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다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4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엘리야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아하시야에게 왜 바알세붑에게 찾아가느냐고 지적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죽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물론 아하시야의 죽음을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야기하신 것이기도하지만, 우리는 다른 예시들을 통해서 ‘회개하고 돌아올때’ 자비로우신 선택으로 그 죽음을 유예시키시는 예시를 들 수 있다.
5 그리하여 사절들은 가던 길에서 돌이켜서, 왕에게 되돌아갔다. 왕이 그들에게 왜 그냥 돌아왔는지를 물었다.
6 그들은 왕에게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길을 가다가 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우리를 보내신 임금님께 돌아가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으려 하다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러므로 너는,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분명히 거기에서 죽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절들은 바알세붑에게 가던길을 돌이켜 왕에게 돌아가 상황을 보고한다. 사절들은 왕에게 사실을 보고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보고한다. 정말 사절들이 엘리야를 못알아보았는지 의문이 든다. 엘리야는 아버지 아합의 시대때부터 수배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영적 승리를 갈멜산에서 해낸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것처럼 이야기하는데는 숨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이 이야기를 듣고있는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게 만든 ‘원수’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고자들은 자신들이 ‘엘리야를 만났고, 그가 한 말을 전하고 있다’ 라는 뉘앙스가 되어 [반역자]로 몰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런 위함을 피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사실을 전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애매한 태도가 앞으로 벌어지게 될 비극적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오로지 ‘직접’ 문제를 대면하고 도움을 구하고 엎드리는 편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7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을 만나서 그러한 말을 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더냐?”
8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털이 많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는 분명히 디셉 사람 엘리야다” 하고 외쳤다.
아하시야는 그 말을 한 사람의 외모를 질문하고, 그 외모를 설명함으로써 엘리야라는 것이 쉽게 특정된다. 보고자들은 엘리야의 말을 전하지 않은 것처럼 꾸며졌고, 왕은 특정된 엘리야를 향해 마음껏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9 그리하여 왕은 오십부장에게 부하 쉰 명을 딸려서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 오십부장은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소리쳤다. “어명이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내려오시오!”
10 엘리야가 그 오십부장에게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모두 태울 것이다.” 그러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와 그의 부하 쉰 명을 태워 버렸다.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에게 부하 쉰 명을 딸려서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어명이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내려오시오!”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모두 태울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와 그의 부하 쉰 명을 태웠다.
아하시야는 오십부장을 통해 엘리야를 붙잡아오도록 명령한다. 오십부장은 왕의 명령을 전달한다. 그는 엘리야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르지만, 명령의 내용은 ‘왕의 명령’이다. 분명 그는 하나님과 왕 중간의 어느 안전한 지대를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오십부장이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이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겠는냐고 조롱하는 것일 수 있다.
이전에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엘리야를 두렵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오십부장은 자신이 데려온 수하들과 함께 엘리야를 못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 것같다.
산 꼭대기에 있다는 점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는 점은 갈멜산의 영적 전투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불이 내린 후에 우상숭배하던 제사장들이 모조리 죽임당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들이 모조리 죽은 일은 그들의 어중간한 태도 또는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강렬한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느냐고 질타하면서 어중간한 태도로 서 있는 것이 곧 우상숭배나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아하시야와 그의 신하들은 여전히 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을 경외할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런 태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런 행위가 바알세붑, 파리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자신의 생명과 운명을 맡기려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일일 뿐이라고 지적하신다.
우리는 그 어중간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직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힘과 능력이 되는 줄 믿는다. 하나님만 선택하기를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