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들은 말로 예수를 책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심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께로 와서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세금문제의 배경은 유대 반란과 열심당의 사상이 배경에 있다. 유대가 기원후 6년에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로마의 속주가 되었을 때 인구조사를 통한 인두세가 처음 부과되었고 같은 해 갈릴리의 유다가 이끄는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이후 애국주의적인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열심당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세금에 대한 문제제기는 열심당의 사상에 대해 예수님의 입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허용’ 할 것인지를 질문한다. 세금을 ‘허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이 충돌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질문은 인간 정부를 반대하는 데 하나님의 승인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도록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이사와 하나님 사이에 대립이 있다는 열심당의 사상을 끄집어 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의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하실 것이다.
15 예수께서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가, 나에게 보여보아라.”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그들은 예수께 경탄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데나리온 한 닢’을 요구하시고 그 초상을 보이게 만드신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돈을 가져왔고 초상이 황제의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 존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우선하여 대립하는 열심당의 논리를 끄집어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법 - 어떤 형상이라도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 을 어기고있다. 게다가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지만, 그들은 그 형상 새긴 것을 ‘가지고’ 있음으로 그들 스스로의 모순이 적발된다.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돌려주다’ 라는 말은 빚진 부채를 변제하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황제의 나라 로마의 평화에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빚을 되돌려주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것은 지금 ‘누구의 통치와 누구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이들이다. 그들이 그 통치와 혜택을 받고 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은혜의 반응을 보여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과연 그들은 합당한 예물을 돌려드리고 있나 질문해볼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통치자이신가?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형수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살아날]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형사취수제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한다. 사두개인들은 현세적인 세계관에서 아주 냉소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세의 규정은 신명기 25장 5-6절에 제시되고 있는데, 사두개인들은 이 법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 법이 제시된 이유는 약속과 언약의 신실하심이 땅과 자손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의 최종 단계다. 더 이상 땅과 자손의 한정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형사취수제라는 법이 부활을 거부할수밖에 없는 근거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무리한 예시를 들어 부활이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지적하신다. 그들은 성경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한계 안에 가두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부활 이후에는 장가도 시집도 유효하지 않다. 우리가 결혼이 온전한 ‘하나’를 이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부활은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상태이므로 더이상 생육할 필요가 없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을 자신들의 근거로 삼으면서도 모세오경에 빈번히 등장하는 천사의 존재, 영적 존재에 대해서 너무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의 이런 태도에 예수님께서 ‘하늘의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한계성 있는 인식과 태도에 일침을 가하신다.
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시지 않으셨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 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부활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부활을 거부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예수님에 의해서 성경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모세의 기준에서는 그들이 모두 이미 죽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 이라는 말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굳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을 거론하실 필요가 없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세에게도 이미 ‘살아있는 존재’로써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살아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시는 언약을 제대로 믿는다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시는 방법과 논리가 겨우 인간적 경험에 한계에 머무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기준과 틀’ 안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의 갇힌 시각은 부활도, 하나님 나라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 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식체계는 결코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하신 일을 모두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헌신할 것은 그 위대하신 일, 그 신실하신 계획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음을 굳게 믿고 오늘을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그 전적 의존과 헌신으로 우리의 생각 너머에 신실하게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