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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부활 이후에만 경험될 수 있는 나라 / 욥 15:17-3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7 네게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 내가 배운 지혜를 네게 말해 주겠다.
18 이것은 내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기 조상에게서 배운 공개된 지혜다.
19 그들이 살던 땅은 이방인이 없는 땅이고,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곁길로 꾀어 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지 못하였다.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지혜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조상’에게 배운 것이라고 지혜의 근거를 내세운다. 그리고 19절은 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아주 완벽하게 설정되어 있는 곳임을 설명하는데, 이방인이 없는 땅, 아무도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 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게 통제된 곳에서 인과응보가 과연 사실인지 ‘사회적 실험’이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도 이해 불능한 상태가 없이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상태가 조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역사적 시간대와 장소가 어디인지 질문하게 된다. 욥기가 족장시대를 배경으로한다는 이해를 배제하고서라도 이런 특정 시기와 장소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한 장소와 시간대를 인정하고 듣는다하더라도 그 진리가 참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석자에 따라서 사건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엘리바스의 근거는 ‘인간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20 악한 일만 저지른 자들은 평생 동안 분노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잔인하게 살아온 자들도 죽는 날까지 같은 형벌을 받는다.
21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다 두려운 소식뿐이고, 좀 평안해졌는가 하면 갑자기 파괴하는 자가 들이닥치는 것이다.
22 그런 사람은, 어디에선가 칼이 목숨을 노리고 있으므로, 흑암에서 벗어나서 도망할 희망마저 가질 수 없다.
23 날짐승이 그의 주검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더 이상 앞날이 없음을 그는 깨닫는다.
24 재난과 고통이, 공격할 준비가 다 된 왕처럼, 그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칠 것이다.
엘리바스가 얻은 지혜에 따르면 악인들은 반드시 혈벌을 받는다. 두려움과 파괴하는 자가 들이닥치고 목숨을 노리는 칼과 흑암이 쫓아오고있다. 이 모든 설명들이 욥이 당하고 있는 일들과 어느정도 겹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엘리바스의 논지는 분명하다. 욥이 당하고 있는 모든 끔찍한 고통스러운 사건은 욥이 ‘악인’ 이기 때문이다. 욥이 당하는 사건들과 악인이 당하는 사건들의 진술이 겹치는 것은 욥이 죄인이라는 명백한 진술이다. 엘리바스는 악인은 형벌을 받는다 라는 진리의 역, 형벌을 받는 이들은 악인이다 라는 진술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25 이것은 모두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전능하신 분을 우습게 여긴 탓이 아니겠느냐?
26 전능하신 분께 거만하게 달려들고, 방패를 앞세우고 그분께 덤빈 탓이다.
엘리바스는 이제 욥의 태도를 지적한다. 악인의 태도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교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욥도 하나님을 향해 항변하는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께 대항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교만’으로 싸여있다. 하나님께 달려들고 덤빌 수록 심판은 가중되리라는 논리가 담겨있다.
27 비록,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잘 먹어서 배가 나왔어도,
28 그가 사는 성읍이 곧 폐허가 되고, 사는 집도 폐가가 되어서, 끝내 돌무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29 그는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고,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하며, 그림자도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30 어둠이 엄습하면 피하지 못할 것이며, 마치 가지가 불에 탄 나무와 같을 것이다. 꽃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 나무와 같을 것이다.
31 그가 헛것을 의지할 만큼 어리석다면, 악이 그가 받을 보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잠언에서도 악인들이 부유한듯이 보이지만 그 끝은 패망이 되리라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엘리바스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들의 끔찍한 운명은 그들이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될 수가 없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폐허가 되는 결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1절은 악인들이 ‘헛것’을 의지하려고 한다면서 문맥상 물질의 풍요로움이 헛것일 뿐더러 자신을 구해줄 수 없는 물질을 의지하려는 것이 ‘어리석은’일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살피고 있는 것처럼 엘리바스와 친구들의 논지는 일부 진리를 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모든 것들은 헛것이며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욥이 그런 어리석은자라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엘리바스의 실책이었고 어리석음이었다.
32 그런 사람은 때가 되지도 않아, 미리 시들어 버릴 것이며, 마른 나뭇가지처럼 되어, 다시는 움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
33 익지도 않은 포도가 마구 떨어지는 포도나무처럼 되고, 꽃이 다 떨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올리브 나무처럼 될 것이다.
34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는 이렇게 메마르고, 뇌물로 지은 장막은 불에 탈 것이다.
35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만을 낳으니, 그들의 뱃속에는 거짓만 들어 있을 뿐이다.
엘리바스는 식물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완전히 마른 나무, 움을 틔우지 못하는 시들어버린 나무가 있다고 말한다. 욥이 그런 나무도 다시 소성할 수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한것과는 거리가 멀다. 엘리바스는 메마르고 불에 타버린 것 같은 나무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뇌물’, ‘재난’, ‘거짓’ 등의 단어가 욥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게끔 말하고 있다. 그 죄악의 목록들의 결과가 지금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1-2장에서 욥이 악인이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엘리바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명제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엘리바스의 말에따라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 안에서 권선징악이 확실히 일어나는 세계를 동경할때가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법 질서와 판단에 따라서 우리가 느끼기에 확실한 죄의 대가와 형벌이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법은 왜곡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여서 유전유죄 무전무죄라는 말까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악인들을 내버려두시지 말고 심판을 감행하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서 비극적인, 악인들이 살기 좋은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억할 것은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악에 대한 결론은 하나님의 유기와 버리심 이어야한다. 하나님은 무능력하셔서 악을 처벌할 능력이 없으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 때문에 마침내 이 모든 부조리와 악을 없애실 날이 오고야만다는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무능력하셔서 내버려두시는게 아니다. 연약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한 은혜의 선택이시다.
엘리바스가 가정한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칼 같은 권선징악을 내리시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만나기는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종 부활과 심판의 때가 있다면 인간의 제아무리 연약한 힘으로 왜곡된 결과들 속에 억울하게 파묻혀 살아가더라도 소망을 붙들며 살 수 있다.
그리고 부활 이후야말로 엘리바스가 생각한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있는 곳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경험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망을 붙들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1.
엘리바스가 상정한 도시는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다.
2.
이 땅에서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를 만나기는 어렵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유보가 우리를 위한 은혜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할필요가 있다.
4.
오직 부활 이후에 모든 심판과 진실의 복구는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