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9:1–4 NKSV
할렐루야. 새 노래로 주님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 앞에서 찬양하여라.
이스라엘아, 창조주를 모시고 기뻐하여라. 시온의 주민아, 너희의 임금님을 모시고 큰소리로 즐거워하여라.
춤을 추면서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소구 치고 수금을 타면서 노래하여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시고 기뻐하신다. 눌림받는 약한 사람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 주신다.
1.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명령을 이스라엘은 어떻게 따라야하나요?
이 시편 속에서 새노래와 찬양은 소고와 수금으로 연주되어야합니다. 소고를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은 사무엘하 6장에 등장하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때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찬양의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자기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것과 눌림당하고 약한 사람에게 영광을 안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49:5–9 NKSV
성도들아, 이 영광을 크게 기뻐하여라. 잠자리에 들어서도 기뻐하며 노래하여라.
성도들의 입에는 하나님께 드릴 찬양이 가득하고, 그 손에는 두 날을 가진 칼이 들려 있어,
뭇 나라에게 복수하고, 뭇 민족을 철저히 심판한다.
그들의 왕들을 족쇄로 채우고, 고관들을 쇠사슬로 묶어서,
기록된 판결문대로 처형할 것이니, 이 영광은 모든 성도들의 것이다.
할렐루야.
2. 시인이 말하고있는 ‘두 날 가진 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도들은 ‘찬양’합니다. 그런데 곧 ‘두 날을 가진 칼’로 복수와 심판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복수’라는 폭력적인 심상이 연결되는지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두 날을 가진 칼’은 창조세계의 기본 질서와 균형을 깨뜨리는 자들에게 가하는 하나님의 복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날을 가진 칼을 휘두르는 이스라엘은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창조세계 질서의 회복을 위해 일하는 도구로 이해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창조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세워갈 때 하나님의 말씀은 불의로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들을 향해 강력히 대항하는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영광과 찬양받기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힘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찬양하는 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치유하고 복구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위해 찬양하는 자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찬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녹아지고 살아내질 때 하나님은 그 말씀 속에서 세상의 정의와 공의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십자가가 그 예시입니다. 십자가가 현실의 눈에서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결국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시듯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승리가 들어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부활과 승리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온 힘으로 ‘찬양’하며 말씀이 우리 삶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