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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공허를 넘어

생성자
성경
창세기
묵상 날짜
2026/01/01
본문
창세기 1:1-1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해설: 1절의 선언은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모든 세계와 우주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대의 세계관은 보이는 물질적 세계는 악하고 타락한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현대의 다른 세계관은 ‘우연’을 통한 생성이라고 말하거나 무작위성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된 세계라고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게 시작된 시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끝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작으로부터 ‘끝’을 예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세계를 ‘악’으로 정의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돈과 공허를 어떻게 관리하고 바꾸시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혼돈은 ‘질서’로, 공허는 ‘채움’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운행하신다는 설명은 하나님께서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사랑으로 세계를 품으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처음 세 날들은 ‘혼돈’에 대한 창조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혼돈’을 나누셔서 ‘질서’를 만드십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의 혼돈을 나누셔서 질서를 만드십니다. 첫번째 창조는 ‘시간’의 창조를 보여줍니다.
해설 : 하지만 여기에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는데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태양의 ‘하루’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거스틴은 태양이 넷째날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시간이 우리가 아는 시간과 같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델리취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은 하루 같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날이 영겁의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로부터 시간은 고정불변의 상태, 누구도 예외없는 법칙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늘 일직선으로 전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과학은 시간이 물리적인 중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시간은 중력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시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중력의 법칙에도, 일직선의 전진하는 선형의 세계에도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것들 밖에서 그 모든 것을 조율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해설: 두 번째 창조는 물과 물을 나누시고 그 가운데 궁창을 만드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늘’의 창조에 대한 언급은 우리가 사는 세상, 즉 우주의 창조에 대해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궁창,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 하늘 위에 눈과 비의 창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는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 존재가 ‘바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우주의 공간에 대한 실재적인 주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알이나 다른 신적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현상과 그에 따른 결과들도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공간을 분리하고 나누심으로 ‘질서’를 부여하셨고 그것을 유지하심으로서 그분의 신실하심을 피조물들 가운데 드러내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해설 : 세번째 날의 창조는 바다와 땅의 분리입니다. 이로써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하늘, 땅, 바다에 생명들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은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고대인들의 생각에 풀과 나무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과학적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고대인들의 관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식물들이 광합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고대인들은 움직이지 않고 자연발생하는 것들로 이해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번째 창조가 보여주는 것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셨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움직이고 살아가는 새, 물고기, 동물들, 인간들까지도 생명력있게 살아가고 번성할 수 있는 조건들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혼돈’이 극복되고 질서세워짐으로 [공허]가 극복된 ‘채워짐’이 준비되었습니다.

묵상과 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가득한 혼돈과 공허를 질서와 채움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 손에 붙들릴 때 질서를 잡게 되고 우리가 살며 움직일 터전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시간과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실 하나님을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